강영식 부장은 1981년 한국전기연구원에 입사한 이래 2005년 정년퇴직하자마자 재 임용되어 5.5년에 걸친 중장기 프로젝트를 2번, 무려 11년이나 더 근무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덕분에 연구원이 위치한 창원이 ‘제2의 고향’이나 다를 바 없다는 강영식 부장에게 4000MVA 대전력 시험설비 증설사업을 비롯한 ‘40년간의 동행’을 엿들어 보자.
지난 6월에 ‘두번째 퇴직’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요새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날씨가 좋다보니 등산도 다니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술 한잔 기울이곤 합니다. 창원에서 아파트나 짐 등을 정리하는데도 두어달 걸리다보니 이제 막 서울에 올라온 셈이네요.
1981년부터 올해까지 한국전기연구원에서만 40년 가까이 근속하셨는데요, 지난 이력을 간략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1968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인천의 이천전기공업을 시작으로 창원의 효성중공업을 거쳐 1981년도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전기분소 건설사업부(前 한국전기연구원)로 이직할때만 해도 창원에서 이렇게 오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1980년대 초는 중화학분야의 대기업을 대상으로 국가적인 규모의 구조조정과 일원화가 진행되고, 창원에 중화학단지가 조성될 시점이였죠. 입사하자마자 고전압 시험설비 건설 시운전을 담당했고, 전력, 대전력, 개발시험 등의 다양한 분야를 맡았습니다. 그 경력 덕분에 2005년 6월 정년퇴직을 하자마자 7월부터 각각 5.5년에 걸쳐 연구분야(정지기기 성능예측용 시뮬레이터 개발 및 지원사업, 정책연구 : 전기기기 TRM 등)와 4000MVA 대전력 시험설비 증설사업을 담당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국무총리 표창(87. 4. 10), 대통령 표창(97. 4. 21), 석탑 산업훈장(03. 4. 10)을 수상했습니다.
한국전기연구원에 대해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국전기연구원은 전력산업과 전기공업 분야의 산업체 기술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된 미래 창조과학부 산하의 정부 출연 연구기관입니다. 1976년 한국전기기기시험연구소로 설
립되었고, 1981년 한국전기통신연구소로 통합될 때 제가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1982년 국내 첫 4000MVA 대전력 시험설비를 준공했고, 2016년 6월에 2번째 4000MVA 대전력
시험설비 증설사업이 준공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8개 본부, 3개 부, 3실로 임직원은 일반직 약 410명, 위촉직 약 220명으로 전체 630명 정도 됩니다.
퇴직 후 복직을 한 연구원이 강영식 부장님 외에 없다니, 그야말로 유일무이한 케이스가 아닐 수 없는데요, 2번째 근무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시기적으로 저의 행운이었지요. 알고 계시다시피 연구원 내에서는 저와 같은 경우가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당시 현재 원장이신 박경엽 박사가 맡고 있던 전력기기연구그룹에서 추
진하고 있던 정책과제(전기기기 TRM)와 일반사업(정지기기 성능예측용 시뮬레이터 개발 및 지원사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력기기에 대해 잘 알고, 업계와도 잘 협력할 수 있는
경험이 많은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퇴직 후 특별한 계획이 없어 자연스럽게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2010년 말 이전 과제가 종료된 후 2011년 ‘4000MVA 대전력
시험설비 증설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이와 같은 사업은 초기 건설(Turn key base)과는 달리 기본설계, 실시설계, 구매 시방서, 검수, 설치 시운전을 연구원이 책임지고 수행
하는 방법으로 진행됩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유경험자가 필요했고 자연스럽게 저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복직 후 참여한 프로젝트는 5.5년씩 진행된 중장기 프로젝트인데요, 퇴직 전과 비교했을 때 업무에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요?
2005년 7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정책연구인 전력기기 TRM 작성과 일반사업 중 각종 전력기기 절연설계를 위한 설계 기초 자료의 정리 및 체계화를 담당하여 기중절연, 고체
절연 및 가스절연 특성연구에 참여하였습니다. 2011년 1월부터 지난 6월까지 대전력시험의 목표 출력을 달성하기 위한 발전기, 변압기, 각종 설비의 정격 및 특성 계산과 사양 결
정 등에 참여하였으며, 특히 시험 항목에 따른 각종 RLC의 계산과 회로의 구성 등을 담당했습니다. 사실 저는 정년까지 대부분 보직을 맡고 있어서 실무를 깊게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험업무도 직접 제품을 시험하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정년 이전과는 달리, 조직관리 및 불필요한 부대업무(구매, 발주 등) 없이 제가 담당하는 기술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좀 더 기술적으로 깊게 살피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좀 더 젊어서 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40년간의 근무를 마치셨으니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업무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을 꼽는다면?
시험업무는 기업을 지원하는 업무이면서 공인 시험기관이라는 역할이 있습니다. 따라서 시험 결과의 해석 및 판정의 신뢰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의무 중 하나입니다. 종종 시험결과가 좋지 않을 시에 기업과의 의견 충돌이 일어나 어려운 상황이 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이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심이 없이 고압적으로 보일 경우가 있지요.
그때가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혹시 제가 전에 그러한 일이 있었다면 이 자리를 통하여 죄송하다고 사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전기연구원은 10년 후 어떤 모습일까요?
전기연구원의 시험분야는 10년 후에는 KEMA와 어깨를나란히 하는 ‘세계 제일의 시험기관’이 될 것입니다. 현재 KEMA(GL, 네델란드), CESI(이태리), KERI(한국) 등이 세계 대전력시험 수요를 분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증설사업이 완료되어 전기연구원의 시험능력이 향상됨에 따라 차차로 아시아 지역의 시험 물량의 이동이 예상됩니다. KERI는 타 기관과 다르게 시험설비의 확보를 국가가 지원하여 시험료가 타 기관보다 경쟁력이 있고, 또한 시험인력확보 및 인력이동이 적어 시험기술의 향상 및 유지가 우수하기 때문입니다. 시험사업 분야는 그동안 많은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초창기 규제의 시험에서 이제는 지원의 시험으로 많은 인식의 변화를 이루었지요. 그러나 아직도 미흡한 부분이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관습에 따라 제도적으로 시험기관과 검사기관의 업무가 혼재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KOLAS 또는 STL guide에 적합한 제도로의 변환이 꼭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전기연구원과 업계의 동료 및 선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엔지니어의 길을 선택한 후배들에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관리자를 선호하는 욕망은 버릴 수가 없겠지요. 그러나 관리자가 되어서도 자기분야의 기술은 계속 발전시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관리자가 되면 기술적인 부분에서 멀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엔지니어의 수명이 너무 짧다고 생각됩니다. 기술축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이 축적되어야만 더 높은 단계로 오를 수가 있지요. 더불어 경영하는 분께도 말씀 드리면 기술과 관리를 분리하여 인재를 양성하는 방안도 한번쯤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