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적합한 유연하고 안정적인 노동시장 구조적 변화 필요
과거 인구 증가와 고성장으로 대표되던 국내 경제는 최근 인구 감소와 저성장으로 바뀌고 있다. 노동 제도 역시 시대가 바뀌면서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함께 인공지능 시대로의 진화는 일자리 종류와 산업을 가리지 않고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이에 국내 경제사회가 지난 70년간 가꿔 온 노동 관행과 관련 제도 중 반드시 변화를 모색해야 할 영역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노동연구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7월 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인구구조 변화, 다가오는 AI 시대의 새로운 노동 패러다임 모색’이란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국내 일자리 중 약 341만개, AI 대체
노동시장 유연성 필요…구조적 변화 추진해야
이번 토론회는 두 개의 세션으로 진행됐다.
‘노동시장의 현재와 미래’란 주제로 열린 세션1에서는 오삼일 한국은행 고용분석팀장과 한요셉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이 발표에 나섰다.
오 팀장은 ‘AI 시대, 노동시장 전망과 과제’란 주제로 발표했다.
오 팀장에 따르면 우리나라 일자리 중 약 341만개(전체 일자리의 12%)는 AI 기술에 의한 대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 팀장은 “새로운 기술은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기도 하지만, 생산성 증대를 통해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기도 한다”며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생산과정을 바꿀 수 있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오 팀장의 발표에 이어 한 연구위원이 ‘초고령사회와 노동시장’이란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한 연구위원은 “초고령사회가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남성 50대 이후 조기퇴직 및 여성 30대 후반 이후 경력 단절 등이 여전히 심각하며, 55~64세 임금근로자 중 임시고용(Temporary Employment) 비중은 OECD 평균의 약 4배에 달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초고령사회에 적합한 유연하고 안정적인 노동 시장으로의 이행을 위한 구조적 변화를 추진할 필요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정규직 임금의 과도한 연공성 완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고용보호의 차별성 축소, 고용안전망 강화, 연령차별 극복 및 자발적 고용연장 장려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래 노동의 과제’란 주제로 열린 세션2에서는 성재민 한국노동연구원부원장과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 학원 교수가 발제를 맡았다.
유연성 제고 위한 제도 변화 필요
노사 의견 교환 활발해야
‘변화하는 시대, 우리나라 노동시장 진단과 과제’란 주제로 발표에 나선 성 부원장은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화된 우리나라 상황에서 인구변화, 기술변화에 대응하려면, 근로자와 기업의 다층적 필요에 부응하는 유연성 제고가 중요한 시대적 과제로 부상했다”며 “연장근로 포함 유연근로의 활성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시 동의 절차 개선을 통한 임금체계 유연적 변화, 기업 내 기능적 유연성 제고를 위한 배치전환, 출향 등 제도가 변화해야 한다”고 의견을 내비쳤다. 그는 이어 “기업의 운영 문화나 정부의 노동정책이 꼭 노동조합이나 법에 따른 근로자 대표체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현장 노사의 의견교환이 활발하게 이뤄지도록 촉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노동시장의 유연적 작동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권 교수는 “AI의 역할 증대로 근로시간의 양이 아니라 인간 노동력의 질에 대한 수요가 커지는 환경에서 노동법은 정해진 근로 장소와 시간, 지휘명령에 따른 수동적 근로자상을 전제로 한 전통적 노동법 체계에 서 벗어나야 한다”며 “미래지향적 노동법 개혁의 과제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수용하면서 자율적이 고 개별적이며, 창의적인 노동을 지향하면서도 이로부터 파생되는 새로운 사회적 보호 필요성을 세밀하게 포착해 입법화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두 개의 세션에 이어 고영선 한국교육개발원장의 주재로 김승용 코코넛사일로 대표, 김영훈 대학내일 대표, 박의규 오케스트로 상무,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 대학원 교수, 박지영 브이디컴퍼니 대리, 한석호 前 전 태일재단 사무총장, 황성현 퀀텀인사이트 대표 등이 참여한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한 사무총장은 “AI 기술 발전과 함께 로봇이 낮은 가격이 됐을 때 1차 노동시장 임금을 적절한 수준으로 조율하지 못한다면, AI와 로봇이 1차 노동시장의 인간 고용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박 상무는 “AI 시대의 노동시장에서 AI가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닌 노동자(근로자)와 AI가 협업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하고,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현재 상황에서 AI는 고령 노동자(근로자)를 도와 경제 활동 연령을 높여줄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협업형 AI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 대표는 “AI로 대표되는 Exponential Technology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예상되는 전통적 산업 구조 재편, 근로 형태의 근본적인 변화 및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미래 기술 인력 양성, 다양한 계약 형태, 선진적이고 탄력적인 근로 환경 및 제도와 규제, 제도권 교육의 혁신 등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근로시간 운영의 탄력화, 임금체계의 현대화, 근로자 대표제 및 노동조건 결정 분권화, 자유노무 제공자의 정상 일자리화를 위한 최소한의 공정한 시장규칙 마련을 시급한 과제”라며 “노동법 제도는 이제 이러한 구조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리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일할 수 있는 포용적 노동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상호 간의 세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세대 간의 소통과 협업을 촉진하는 교육과 프로그램을 통해 고령 근로자와 젊은 근로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훈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