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제연구원, 제1차 탄소중립 제도구축포럼 개최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최근에 제정된 EU의 탄소중립산업법 등은 모두 친환경 산업을 통한 제조업 부흥을 노리는보호무역주의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에 수출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된다. 한국법제연구원은 지난달 6일 서울 상공회의소에서 ‘탄소중립과 산업전환’을 주제로 2024년 제1차 탄소중립 제도구축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유럽연합의 탄소중립산업법 시행을 앞두고 국내 탄소중립 관련 산업의 육성과 지원에 대한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포럼에서는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장은혜 한국법제연구원 기후변화법제팀장이 ‘EU 탄소중립산업법과 유럽의회의 선거’ ‘탄소중립사업 육성을 위한 국내 제도 구축 법제의 방향성’을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한 교수에 따르면 앞으로 수십 년의 국제경쟁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청정기술의 경쟁일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미국은 자국 내 청정기술 제조업에 생기를 불어 넣기 위해 3,690억달러를 대출, 보조금 등 다양한 방식으로 투자한다는 내용이 담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채택했다. 유럽은 청정기술 제조업자를 유럽연합 역내로 유인하고 청정기술 제조 능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규제완화를 통한 청정기술 산업 시장의 개혁을 위해 탄소중립산업법을 시행한다.
한 교수는 “유럽의 탄소중립산업법은 전략적 탄소중립에너지 기술에 초점을 맞췄다”며 “태양열 기술, 육상풍력기술과 해상재생가능 기술 등 19개 영역 내 42개 하위 기술 범주를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탄소중립산업법에는 청정에너지 기술 관련 프로젝트 지원, 허가, 운영 등과 관련된 규제환경의 간소화, 탄소중립기술 촉진지구 선정 등이 주요 내용으로 담겨있다. 실례로 집행위원회와 회원국은 2030년 유럽연합의 에너지와 기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탄소중립기술 제조 프로젝트를 지원하며 소규모 탄소중립기술 제조 프로젝트는 12개월 대규모는 18개월 이내 허가한다.
한 교수는 “2023년 3월 발의안의 수립까지 대략 6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을 정도로 신속하게 수립됐다”면서 “핵에너지와 천연가스를 환경 측면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행위로 규정한 위임법이 영향평가를 거치지 않고 채택되면서 유럽연합 내 절차적 논쟁을 야기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극우 세력의 확대, 집행위원장의 안보 우선 정책 등으로 인해 탄소중립산업법이 유럽연합 회원국 간 응집력 있는 탄소중립산업 제조업 기술 유지 및 공급망 위기 극복을 위한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유럽의회 선거 이후 정치 지형을 고려하면 탄소중립산업법의 강화보다는 회원국의 권한 유지, 또는 강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장 팀장은 탄소중립산업 육성을 위한 주요 쟁점을 산업정책과 환경정책의 결합, 산업활동에 대한 국가지원 및 개입의 방향성 측면에서 검토하고, 제도구축법제의 방향성 설정을 위해 현행 제도 활용방안과 신규 법제화 항목의 분석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내의 경우 ‘기후위기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국가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특별법’ ‘기후변화대응 기술개발촉진법’ ‘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등을 통해 탄소중립에 대응하고 있다.
장 팀장은 “수출의존형 산업구조 특성을 고려했을 시 국외의 비관세 환경무역장벽을 국내 제도화하기는 어렵다”며 “산업공정에서의 탄소배출 감축 제도화, 국내 탄소가격제도의 보완 등을 통해 비관세 환경무역장벽에 대응해야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산업정책과 환경정책의 결합이 필요하다”면서 “정부부처 간에 공통의 과제 발굴 및 수행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 발제 후 ‘산업계 탄소중립 제도구축의 방향성’을 주제로 신동원 한국환경연구원 박사, 박성준 국회미래연구원 박사, 박순철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박사, 오덕교 한국 ESG 기준원 박사가 참석한 가운데 열띤 논의를 이어갔다.
신 박사는 “주요국들이 전례 없는 중장기 전략과 대규모 투자 지원을 계획하여 기후변화를 완화하고 탈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도모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녹색산업 육성을 위한 장기적인 재정지원, 중점기술을 선정해 집중 투자를 위한 세액공제나 보조금과 같은 구체적인 수단이 담긴 정책 패키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성준 박사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녹색산업을 향후 성장동력으로 인식하고 대규모의 지원을 실시하고 있으며 보조금 경쟁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국내의 경우 통상 마찰을 회피하면서 국내 제조 생태계를 육성할 수 있는 방안을 전략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박순철 박사는 “국내 탄소중립 선언 이후 이행 계획을 수립했을 때의 전환 속도보다 대외적인 여건으로 인해 요구받는 전환 속도가 빨라졌다”며 “빨라진 속도에 대응할 수 있는 지원 방향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오 위원은 “온실가스 감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필요한 기술이 적시에 산업계에서 활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자체적으로 관련 기술개발을 적극적으로 하는 기업에는 정책적으로 혜택을 제공해 잘하는 기업이 더 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고 의견을 내비쳤다.
한편 한국법제연구원은 국내 탄소중립 제도구축을 위한 쟁점 논의 및 법제화 이슈 도출 필요성에 따라 2022년부터 국내외 관련 정책입안자와 연구자를 초청해 포럼을 개최해오고 있다.
이훈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