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라는 말은 이제 보편적인 단어가 되었다. 폭염, 한파, 폭우, 가뭄 등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이상기후는 기후위기 극복이 단순히 빙하 위에 애처롭게 서 있는 북극곰을 위한, 50년 후, 100년 후 미래세대를 위한 준비와 투자가 아니라 현 세대에게 즉각적으로 닥쳐온 생존의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영국 글래스고에서 폐막한 제26차 유엔 기후변화당사국 총회(COP26)에서 사이먼 코페 투발루 외교장관은 허벅지까지 차오른 바닷물 위에서 연설에 나섰다. 투발루는 남태평양 적도 부근에 위치한 작은 국가로 가장 높은 지역이 해발 4m에 불과한, 전체 면적 26㎢의 작은 섬이다. 해수면의 상승이 곧 나라가 물에 잠기는 사태로 이어지는 곳이다. 물론 이번 연설은 연출이었겠지만 지구 온도를 낮추는 노력이 시급하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줬다.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전 세계인 10만명이 모여 대행진을 벌인 부분도 상징적이다.
인상적인 COP26은 사실상 실패로 평가받는다. 글래스고 기후 합의문에서 당초 석탄발전의 단계적 폐지를 합의할 때만 해도 석탄 증기기관의 발상지로 산업혁명의 신호탄을 알렸던 영국 글래스고에서 역사적인 석탄발전 폐지가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컸다. 하지만 예정보다 하루를 넘긴 폐회식날 인도, 중국 등의 요청으로 단계적 감축으로 최종 합의문이 수정되면서 의미가 퇴색됐다.
더 이상 지구 온도가 상승하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탄소중립의 중요성과 필요성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를 위한 비용을 공동으로 부담해야 한다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기업들은 탄소중립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규제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높다.
하나의 국가 내에서도 탄소중립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치열한데 국가 간 합의가 쉬울 리 없다. 역시 비용 문제가 가장 크다. 일각에선 탄소중립 논의가 선진국들의 ‘사다리 걷어차기’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럽연합을 비롯해 탄소중립 논의에 열심인 국가들은 이미 저렴한 화석연료 활용으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효과를 충분히 향유하고 저탄소산업구조로 전환을 완료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탄소중립 선도국가로 꼽히는 독일의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1991년 24.8%에서 2019년 19.1%로 낮아졌다. 영국 역시 제조업 비중이 같은기간 16.3%에서 8.7%로 낮아졌다.
반면 우리나라의 제조업 비중은 1991년 27.6%, 2019년 27.5%로 대동소이하다. 중국, 인도 등 인구가 많고 굴뚝산업을 주력산업으로 경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진국이나 개발도상국들의 상황은 더하다. 두 국가가 나서서 이번 글래스고 합의문의 석탄발전 퇴출 문구를 수정한 연유가 짐작이 된다. 중국과 인도는 탄소중립 목표 역시 각각 2060년과 2070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인도는 기후변화 문제에 재정을 투입할 여력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을 위해 선진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1조달러 규모의 기후금융을 제안하기도 했다.
결국 이번 글래스고기후합의는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년에는 더 큰 목표를 가지고 만나자는 선언적인 합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COP27은 양상이 달라질까? 값싼 화석연료의 유혹을 이기긴 쉽지 않다. 이상과 현실의 조화는 가능할까? 탄소중립이 반드시 가야 하는 길임에는 분명하지만 이상적인 꿈만 꿔서는 안된다. 탄소중립이 우리 경제성장을 견인할 수 있도록 거시적인 시각이 담겨야 하는 것도 분명하다. 기후 선진국의 사다리 걷어차기에 당하지 않고 탄소중립을 우리의 성장동력으로 삼기 위한 해법과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