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탄소화와 더불어 에너지산업에서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이슈는 바로 디지털화(Digitalization)이다. 에너지산업의 디지털화란 디지털 기술과 에너지시스템의 접목, 즉 에너지 시스템 안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 분석,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빅데이터, IoT, 클라우드 등 4차산업혁명 기반 기술들의 상용화에 속도가 붙으면서 에너지산업과 결합해 활용되는 ‘디지털 전환’이 속속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디지털화로 인해 에너지산업의 경쟁력이 부존자원이나 설비 중심이 아닌 소프트웨어, 플랫폼 등 기술력 중심으로 옮겨갈 것이란 진단도 나오고 있다. 다양한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시장의 출현을 통한 성장동력 창출 역시 기대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에너지산업의 디지털 전환은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 유통, 저장 등 산업 생태계 전반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디지털화는 에너지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3D’로 불리는 탈탄소화(Decarbonization), 분산화(Decentralization)와 함께 에너지 산업의 혁신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전력산업 측면에서만 봐도 디지털화는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자동, 무인운영과 시스템 최적화 등으로 비용을 절감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미 VR이나 AI를 통한 발전소 예측정비나 운영 효율화를 통한 연료 절감 시스템을 운영하는 기업들도 많아졌다. 석탄발전이나 가스발전의 경우 빅데이터를 활용해 연소를 최적화함으로써 오염물질 배출을 최소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송배전 분야에서는 역시 센싱기술이나 드론을 활용한 유지보수 예측, 원격감시 시스템 등으로 최적화된 운영이 가능하다. 탄소중립에 따라 확산되는 재생에너지 자원의 간헐성 문제를 해소하고 전력계통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발전량 예측이나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재생에너지 자원을 한 곳에 모아 관리하는 가상발전소(VPP) 역시 실용화 단계다. 시장 측면에서도 최근 논의가 한창인 실시간 요금제, 수요자원 관리를 통한 피크시간대 전력수요 절감, 에너지 소비 최적화는 물론 전기를 사서 쓰는 것 뿐 아니라 직접 생산해 판매할 수 있는 에너지 프로슈머(prosumer) 역시 디지털화를 통해 고도화되고 있다. 해외에선 이미 태양광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를 가상 계정에 적립해뒀다가 전기차 충전이나 전기료 납부에 활용하는 서비스 등도 시행되고 있다.
한전은 지난 2019년부터 매년 생산되는 약 3조 3천억개의 전력 빅데이터를 공개하고 있다. 데이터에 포함된 개인정보는 비식별조치 또는 데이터 결합을 통해 식별할 수 없도록 가공한 뒤 유출되지 않도록 처리해 프라이버시 침해가 없도록 했다. 다양한 산업‧서비스와 융복합을 통한 새로운 먹거리 창출도 기대된다. 전기 사용패턴을 분석해 소비자들의 전기요금을 절감해 주는 서비스는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전기, 가스 등 에너지와 통신의 결합을 통한 스마트홈이다. 날씨 분석과 전기, 난방 소비량 분석, 유사 환경 비교 등을 통해 최소 비용으로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골자다. 에너지 컨설팅을 통해 건물이나 기업 공정에서 새는 에너지, 또는 부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즉각적인 대응을 통해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한전이나 발전회사 역시 수요 반응에 따라 피크 설비를 감축하고 발전소나 송전선로 등 전력설비 건설도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에너지 산업의 디지털화는 산업 간, 서비스 간 경계를 허물어 갈 수 있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하나의 플랫폼으로 다양한 시스템을 통합 운영함으로써 유연한 에너지 서비스, 즉 실시간 상호작용을 통해 낭비되는 자원 없이 수요와 공급을 맞춰나가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40년까지 스마트 전력 인프라에 10억 가구와 110억개의 스마트기기가 연결될 것으로 전망했다. IEA는 이를 통해 약 185GW수준의 전력 유연성 확보를 예상했다. 우리나라 전체 발전용량의 약 1.4배에 해당하는 설비 투자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의미다. 보안 문제, 사이버 공격에 대한 위협, 자동화‧원격화에 따른 일자리 문제 등 해결해야 할 선결조건들이 있지만 재생에너지 자원의 증가, 안전에 대한 강조, 효율적인 운영을 통한 인프라 효율성 향상 등을 위한 에너지산업의 디지털화는 탄소중립시대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디지털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우리나라도 그 중심에 서 있다. 찬찬한 계획과 꼼꼼한 지원을 통한 혁신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