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은 끝났지만 지난 대선 토론회에서 화제가 되었던 단어가 있다. ‘RE100’ 글로벌 기업들의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 캠페인이다. 기후위기가 현실화됨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을 중심으로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로 조달하겠다는 RE100 캠페인 참여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 단순 자사 기업의 참여 뿐만 아니라 협력업체에까지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는 기업들이 늘면서 RE100 캠페인 참여가 이른바 무역장벽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RE100 참여 기업과 거래를 추진하던 국내 기업이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에 발목이 잡힌 경우도 발생하면서 정부도 부리나케 관련 법, 제도 손질에 착수했다. 그리고 2021년 재생에너지 사용을 인증받을 수 있는 제도, K-RE100이 시행되었다. 이행수단은 ①녹색프리미엄 ②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구매 ③제3자 전력구매계약(PPA) ④재생에너지 발전사업에 지분참여 ⑤재생에너지 설비 직접 설치·사용 등 총 5가지에 세부 고시 제정 작업 중인 직접PPA까지 도입되면 총 6가지의 이행수단이 제도에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제도 시행 1년이 지났지만 아직 우리나라 RE100은 걸음마 단계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지금까지 K-RE100 제도에 참여한 기업은 모두 71곳. 그 중 녹색프리미엄 제도를 활용한 곳은 95%에 육박한다. 녹색프리미엄은 전기 소비자가 일반 전기요금에 재생에너지 프리미엄을 더한 요금을 내고 전기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재생에너지 사용에 필요한 비용을 더 낸다는 차원이 있지만 재생에너지 발전량 상승이나 온실가스 감축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제도는 아니다. 실제로 다른 수단과 달리 온실가스 감축실적도 인정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녹색프리미엄을 주로 활용하는 이유는 다른 이행수단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녹색프리미엄으로 거둬진 재원을 재생에너지 활성화 등에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중소‧중견기업의 여건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 기업에 RE100 참여를 요구하면, 자연스레 국내 기업의 협력기업들도 재생에너지 사용이 필요한데, 원가 부담이 커서 선뜻 참여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대기업과 달리 ESG 경영 강화나 기후위기 대응 같은 커다란 방향으로 비용을 더 내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안으로 논의되는 것이 산업단지 RE100이다. 개별 기업 단위가 아니라 그룹 단위로 RE100 이행체계를 마련하는 것으로 대규모 재생에너지를 사용할만한 수요도 없고 여력도 부족한 중소‧중견기업들이 모여 일대다 형태로 재생에너지 사용 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과거 산업단지 지붕에 태양광발전설비 직접 설치를 지원하는 사업이 진행되기도 했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사업주들 이해관계도 있고 공정에 차질을 준다, 굳이 재생에너지 생산 전기판매까지 할 만큼 유인이 없다는 등 참여가 많지 않았다. 다만 과거와 달리 RE100이라는 수요가 있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지자체들도 있는만큼 과거보다 진일보한 성과도 기대된다. 단체계약을 통해 대형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유치하고 구매 단가를 낮춘다면 활성화가 될 유인은 충분하다. 정부가 추진중인 스마트그린산단과도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정부는 디지털화와 에너지자립화를 구현한 스마트그린산단을 전환 또는 신설을 추진해 왔다. 새만금스마트그린산단이 첫 사례다. 조성단계부터 재생에너지 발전단지를 구축하는 한편 태양광 발전사업자와 스마트그린산단 입주기업 간 PPA 계약도 추진한다. 제3자PPA의 경우 중소‧중견기업에 한해 1년동안 망 이용료를 지원하는 사업도 현재 진행 중이다. 글로벌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법 제도 구축이 속속 진행 중인 가운데 민간의 참여 활성화를 위한 다각적인 제도 개선과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