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산업은 기후변화, 환경오염, 자원 절감 등과 같은 중요한 사회적 문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산업으로서, ESG경영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범기업으로의 역할이 중요하다. ‘ESG 경영’을 보편적 가치로 수용하고, 실천함으로써 에너지산업계에서 ESG 선도기업이 배출되길 기대하며 서갑원 대한전기협회 상근부회장<사진>으로부터 ESG경영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은 지구적 과제
최근 인공지능 정보제공서비스로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는 챗GPT가 2023년 ESG 경영 키워드를 묻는 질문에 탈탄소, 순환경제, 기후대응, 사회정의, 투명성을 제시한 바 있다고 합니다. ESG 경영 전략에 있어 환경과 기후위기 대응 비중이 높음을 보여줍니다. 챗GPT의 사례뿐만 아니라 실제로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 300대 기업 ESG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최우선 과제가 무엇인지를 조사한 결과 약 70%가 환경부문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얼마 전 막대한 피해를 발생시킨 캐나다 산불, 심각한 폭염과 가뭄으로 바닥을 보이는 ‘영국의 네스호’를 보도하는 뉴스의영상들은 헐리웃의 재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장면으로 충격을 줍니다. 더욱이 세계 각지에서의 올여름은 여느 해보다 유난스러운 폭염과 폭우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처럼 지난 수 년 간 지구촌 곳곳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심각한 재난을 빈번히 겪으며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달성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구적 과제라는 국제사회의 공감대가 형성되왔고 그 중대성과 시급성 또한 더욱 강조되는 추세입니다.
유럽연합(EU) 높아지는 탄소무역장벽은 우리 기업들의 위기
미국,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탄소무역장벽은 점차 높아질 것이 자명한 가운데, 수출 의존도가 높고 탄소집약적 산업이 많은 우리나라 경제와 국내 기업들에게는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이처럼 탈탄소로의 전환이 생존전략이 되고 있는 기업의 ESG 경영은 빠르게 글로벌스탠다드 혹은 메가트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많은 국내 기업이 ESG 경영 전략을 통해 기후위기 대응 등 환경부문의 가치창출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국·내외 현실이 녹록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 중 가장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는 분야가 에너지 관련 산업라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 글로벌 석유회사인 엑손모빌, 셰브론, 로얄더치셸, BP조차 ESG 소송의 단골손님이 됐습니다. 지난해 미국 공공과학도서관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은 이 기업들에 대해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계획만 있을 뿐 실천이 부족하다며 그린워싱을 지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기업들은 기후단체나 유력 언론들로부터 소송 등 다양한 압박과 비판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세계 에너지 위기 국면에서 석유, 가스,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를 생산해서 파는 기업들은 단기적으로 큰 이윤을 거둘 수 있는 유혹을 외면하는 것쉽지 않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ESG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ESG는 피할 수 없는 압박’이 아닌 경영의 지혜에서 비롯된 산물
한편 전력을 생산하는 기업의 경우 화석연료 의존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신재생 투자를 늘려야 하는데 적지 않은 재정적 부담뿐만 아니라 지난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실행 전략의 우선순위에 있어 환경부문(Enviroment)과 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ment)가 충돌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에너지 산업계에 있어 ESG 경영이란 매우 도전적 과제이나 ‘ESG는 피할수 없는 압박’ 또는 ‘기업을 좌우하는 명운이 달린 평가’로만 인식하고 받아들인다면 그 성과를 도출해 나가는 것이 기업에 있어서 매우 ‘가혹한 혁신’일 수 있겠다는 우려가 듭니다.
ESG가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 기업의 책임을 가중시키는 규제나 윤리 강화를 위해 만들어진 규범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맥락이 이어져 온 경영의 지혜에서 비롯된 산물이라는 조금 더 넓은 관점에서 보편적 가치로서 ESG를 받아들인다면 기업에게 한층 더 프렌들리 한 개념으로 자리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대가 변천해도 기업의 이윤추구와 사회적 가치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 연구되고 제시됐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출현한 새로운 형태의 기업 및 경영체제가 서양에서 먼저 자리 잡음으로써 아무래도 근·현대 기업 경영전략은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확립됐고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V(공유가치창출 Creating Shared Value), ESG와 같은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 지역사회·환경 등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경영전략 또한 미국·유럽에서 태하고 확산됐습니다.
한·중·일 동양의 대표적인 경영사상도 이미 ESG를 장려하고 있어
한편으로는 사회적 가치와 기업 이윤의 공존을 강조하는 기업 정신이 일찌감치 동양에서도 발현해왔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4,000여 년의 전통을 가진 중국 상업의 역사 중 청나라 때 정립된 ‘사상십요(士商十要)’라는 것이 있습니다. 상인들이 지켜야 할 수칙으로 ‘주의를 깊게 하고 겸허할 것(공존)’, ‘사람에게 함부로 하지 않고 충심으로 선행할 것(사회책임)’, ‘원장부를 성실하게기입할 것(투명성·거버넌스)’ 등을 강조합니다. 중국의 10대 상방(商幇) 중에서 가장 뛰어난 상방으로 꼽히는 휘주상인은 신의(信義)를 바탕으로 제방 구축, 수로 정비, 각종 사회기구를 건립·영하는 등 지역사회와의 공존을 위한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투자로 대운하시대 회양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번성했다고 합니다.
일본에는 에도시대 3대 상인 중 하나인 오미상인(近江商人)들의 신조로 ‘산포요시(三方よし)’라는 것이 있습니다. “파는 사람 좋아, 사는 사람 좋아, 세상 좋아, 이렇게 삼방(三方) 좋다”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상인은 이윤만 추구하는 것이 아닌 이해관계자의 이익 실현과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 토정(土亭) 이지함은 상인으로도크게 성공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지함은 ‘3대부고론(三大府庫論)’을 통해 쌓여있는 재물 창고를 열어 세상과 나누고, 인재창고를 열어 신분을 넘어선 능력 있는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하고,땅·바다와 같은 자연의 창고로부터 재물을 개발함은 백성의 삶을 위한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재해석하자면 공존과 지속가능 경영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韓·中·日 3국의 역사에서 나타나듯이 동양에서도 오래전부터 오늘날의 ESG 경영과 상통하는규범 또는 이론이 태동한 것입니다. 이처럼 ESG 경영은 오랜 시간 관통해온 경영의 지혜가 집약된 보편적 가치이자, 기후 위기 대응·탈 탄소사회 전환이라는 새로운 도전적 과제에 맞서 기업의 성공적 변화를 이끌 수단으로 정립됨으로써 일각의 주장처럼 일시적 유행이 아닌 오랫동안 그 근간이 유지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에너지전환의 성패 여부가 탈탄소를 추진하는 모든 기업들에게 직접적 영향을 주는 만큼 에너지 관련 기업들이 추구해야 할 ESG 전략과 목표, 달성과정은 어떤 분야보다도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동시에 에너지와 관련해 창출되는 신기술, 신산업, 신시장이 무궁무진함으로 ESG 경영을 선도하는 기업들이 에너지 산업계에서 많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도 합니다.
괴테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중 “진정한 상인의 정신보다 더 폭넓고 더 널리 퍼져야 할 마땅한 정신이 또 있는지 모르겠다”는 상인 베르너의 대사가 나옵니다. 역사적으로 상인(오늘날로 해석하면 기업)이 늘 개척과 변화의 원동력이 되어 왔음을 시사하는 소설의 구절처럼 우리나라 에너지 기업들이 내실 있는 ESG 경영 실천으로 탄소중립시대의 혁신을 주도하고 국가의 새로운 도약과 성장을 이끌어 갈 수 있길 바랍니다.
유혜영 객원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