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은 탄소중립과 에너지안보 및 국가 경제에 필수적 요소이다. 특히 지난 40여년간 높은 품질의 전기를 안전하고 경제적이고 안정적으로 공급함으로써 산업경쟁력 강화, 무역수지 개선, 에너지 복지 등에 크게 이바지해왔다. 1969년에 설립된 한국원자력학회는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국내 원자력의 개발, 발전, 안전에 기여했다. 외형 및 내실 성장을 이뤄내며 현재 6,000여명의 개인회원과 62개 특별회원기관이 참여하고 있으며 원자력 종합학술지인 Nuclear Engineering and Technology는 원자력 분야 세계 5위(지난해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9월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사진>가 제36대 학회장으로 취임했다. 정 회장을 만나 탄소중립 시대의 원자력 및 학회의 역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 학회를 이끌어 갈 각오에 대해 들어봤다.
Q. 제36대 원자력학회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취임소감 부탁드립니다.
A. 어깨가 무겁습니다. 우선 탈원전 정책의 후유증을 극복하는 일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멈춰있던 시스템이 다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원전생태계가 붕괴된 것 말고도 앞으로 어떤 새로운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원자력계는 탈원전이라는 5년의 기간을 지내면서 마인드도 바뀌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대처가 필요합니다.
한편 원자력에 대한 세계적인 수요는 늘어나고 우리가 크게 역할을 해야 할 상황입니다. 결국 병을 앓다 일어나자마자 열심히 일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런 원자력계의 문제는 관련기관이 스스로가 해야 합니다. 학회는 실행력있는 기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학회가 이 일을 감당하는데 해야 할 역할이 있습니다. 특히 정책적 안목을 제시하고 기관이 스스로 하지 못하는 것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 소임을 다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습니다.
Q. 원자력학회를 이끌어 갈 각오와 방향성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A. 급한 것은 탈원전 정책의 후유증을 극복하는 일입니다. 원전산업부문은 신한울3·4호기 건설이 중지되어 있었고 천지1·2호기와 대진1·2호기 건설이 백지화됐으며 월성1호기도 조기종료시켰습니다. 이것이 산업계나 부품공급망에 ‘좌절적 시그널’을 주었습니다. 유지할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포기하며 원자력을 떠난 기업들이 많은 상황에서 라이센스를 포기한 기업들이 많습니다. 과연 탈원전 정책 이전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지 회의적입니다. 연구부문도 4개 분야만 국한하도록 강요됐습니다. 안전, 방사선, 해체, 방사성폐기물 이렇게 4개 분야로만 국한된 결과 원자력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연구들에 소홀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세대의 원자로, 수소생산용 원자로 이런 것들입니다. 뒤늦게 시작했지만 SMR도 선도국에 비해 많이 뒤쳐졌습니다. 분서갱유였다고 봅니다.
보다 근원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탈원전 정책이 정치권만의 과오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에너지 업계에서 마치 원전이 빠져야만 자신들의 공간이 생긴다고 믿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지속적으로 원전을 공격합니다.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원전의 안전성을 폄하한다거나 사용후핵연료 비용이 포함되지 않아서 전력생산단가가 낮다거나 사용후핵연료 처분이 매우 어려운 일이고 엄청나게 쌓여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들입니다. 문제는 이런 주장을 따르면 전기요금이 감당할 수 없을만큼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이 흐름에 정부의 관계자도 빠져있고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해소돼야 하는 문제입니다.
원자력계 내부에도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업무가 분절화되다 보니 전체를 아우르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뛰어난 전문가이지만 그 전문성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결정하는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더 도약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국민과의 소통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정책추진에 있어서 정부의존도도 높았습니다. 연구부문도 성과를 내지 못 하고 있었고 이완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내부적인 문제에 대해 원자력계가 스스로 대응해야 합니다.
Q. 윤석열 정부가 취임한 지 1년이 넘었습니다. 원자력업계의 변화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A.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반대했지만 아직까지 관료와 사회의 관성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제10차 전력수급계획에는 신규원전 건설계획도 없고 1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부지를 새로 선정한 것도 없습니다. 한전의 적자도 원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린 것이 원인이지만 그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긴축경영이라는 답이 아닌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제10차 전력수급계획에는 신규 원전 계획이 없습니다. 말로는 신규원전이라고 되어 있지만 신한울1·2호기, 신고리5·6호기, 신한울3·4호기는 기존 계획에 의해 건설중인 원전입니다. 이건 포장지를 신규원전으로 씌워서 국민을 속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재생에너지나 LNG발전소는 부지와 사업자가 결정되지 않은 경우 ‘재생 250MW’, ‘신규 LNG1·2호기’ 이런 식으로 물량으로만 잡아놓기도 했지만 원전에는 그런 융통성이 발휘되지 않았습니다. 전력수급계획은 시장에 시그널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그널대로라면 대통령의 정책과 달리 산업통상자원부는 신규원전 건설계획이 없으니 알아서 철수하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원전비중을 30%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도 2035년 전력수요를 줄여서 그렇게 보이도록 착시효과를 노린 것입니다 신규원전 건설이 없고 계속운전은 하게 해 그런 수치를 만든 것인데 건설생태계 측면에서는 더 분노하는 일입니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신규원전을 포함한다는 계획은 전 산업부 장관이 떠나기 전 계획이었지만 전력수급기본계획 이전에 추진해야 할 부지확보조차 추진되는 것이 없습니다.
원자력 산업을 떠나 한전이 적자를 면할 대책이 없습니다. 한전이 방만경영을 해서 적자가 난 것이 아니라 원전비중이 줄고 재생에너지와 LNG의 비용이 늘어서 발생된 일입니다. 물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연료비증가도 원인이지만 그 또한 탈원전 정책의 결과입니다. LNG 비중을 높였기 때문입니다.
현 정부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합리적으로 조정한다고 계획을 세웠지만 실제 실행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10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줄였다고는 하지만 미래의 물량을 줄인 것이지 현재의 물량은 줄이지 않았습니다.
실례로 급전 우선순위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같은 시간대에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전력이 생산되면 재생에너지 전력을 우선으로 구매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한전이 5배 비싼 재생에너지를 구매해 공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에 한전이 적자를 면할 수 없습니다.
아직까지 보이는 것이 없으니 학회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합리적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원칙에서 벗어나면 문제가 생깁니다. 에너지수급은 안정적 공급 그리고 사회적 비용최소화를 원칙으로 에너지원 다변화를 추구해왔었습니다. 이 원칙을 안전과 깨끗으로 바꾸고 에너지원 다변화를 역행했기 때문에 매우 취약한 구조가 됐습니다.
또한 지난 20년간 원전축소정책의 결과(전력수급계획 수립시 전력수요를 과소예측) 현재의 에너지믹스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원전이 너무 적고 LNG가 너무 커진 점입니다. 정부가 추구하는 합리가 현실적으로 구현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Q. 최근 정부에서 CFE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A. RE100이라는 말이 대선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기업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100% 사용하자는 캠페인입니다.
우선 전력망에 재생에너지 비중은 20%가 한계인데 어떻게 100%를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상 100%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비용을 지불하고 인정을 받는 인정제도로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입니다.
그게 기업활동을 제약할 수 있을까요? 나라마다 재생에너지 여건이 다릅니다.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것이 목적이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은 그 수단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원전에 의한 이산화탄소 절감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또 이건 탈원전 정책과 내용이 같습니다. The Climate Group이라는 영국 환경단체의 주장인데 정부가 그걸 주장했었습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는 그 이전에도 있었지만 1992년 리우회의에서 중요한 진전이 있었습니다. 1997년 교토프로토콜이 채택되면서 의무로 부각됐습니다. 이 당시 이산화탄소 배출감축은 선진 7개국의 몫이었습니다. 지구상의 이산화탄소 증가에 기여했던 국가가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십수년 간 이행되지 않고 논의만 거듭하다가 파리협약에서는 전세계 모든 나라가 동참해서 이산화탄소를 줄이기로 한 것입니다. 그만큼 국가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우 현명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정부가 UN Energy Compact의 CFE(Carbon Free Energy)와 같이 RE100을 대체하는 수단을 강구해서 기업의 활로를 열어주어야 하고 이에 전문가들이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RE100은 NGO가 시작한 일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체계를 갖추게 됐습니다. 아직까지 CFE는 걸음마 단계입니다. 그래서 참여/평가 등과 관련해 체계를 갖추고 CFE 몇 등급이 RE100 몇 등급에 해당하는지 등가표 같은 것을 만들어서 기업이 RE100의 장벽을 CFE로 넘어갈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Q. 원전 확대도 중요하지만 사용후핵연료 처리도 중요합니다.
A. 사용후핵연료는 사회적인 이슈도 있고 원자력계 내부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전자는 인식의 문제와 반 핵단체의 선동에 기인한 것입니다.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이 위험할 이유가 별로 없는데 그게 안되는 것이 이상한 일입니다. 후자는 원자력계가 과연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정답을 내놓으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고 있느냐인데 이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성찰할 부분이 많습니다.
원자력계가 사용후핵연료 처분문제를 도외시하고 ‘화장실 없는 맨션’을 지었다고 하는데 화장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가지만 사용후핵연료는 마지막으로 가는 곳입니다. 즉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은 화장실이 아니라 묘지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화장실 없는 맨션’이라는 표현에 선동이 깔려있는 것을 원자력계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정부나 사회가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기 전에 원자력계에서 먼저 답을 내놓아야 하는데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이것도 앞으로 체계를 갖춰야 할 문제입니다.
Q. 미래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SMR과 관련해 세계 시장 전망 및 국내 기술수준, 향후비전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A. 우선 대형원전과 SMR은 별개의 시장입니다. SMR은 규모가 대형원전의 1/10 – 1/20 수준이기 때문에 대형원전에 대한 대체품이 아닙니다. 열과 수소 생산, 지역난방, 화력발전소 대체, 선박의 추진체 등이 별도의 시장입니다. 따라서 대형원전을 지을 수 있는 나라는 대형원전을 짓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80여종의 SMR이 여러 가지 목적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전력생산용도 있지만 선박의 추진체나 수소생산을 위해서도 개발되고 있습니다. 특히 용량, 안전성 등으로 볼 때 석탄발전소가 퇴출될 때 이를 대체하는 것도 전망이 밝습니다.
탄소중립을 하기 위해 원자력발전소와 SMR의 수요가 높아질 것입니다. 우리 기술수준은 매우 높습니다. SMART라는 세계 최초의 SMR이 2012년 개발되어 규제기관의 설계인증을 받은 바 있고 생태계가 살아 있기 때문에 기술적, 산업적으로 경쟁력이 있습니다. i-SMR(혁신형 SMR)이 2028년을 목표로 개발 중에 있습니다. 또한 두산에너빌리티 등이 SMR의 파운드리로서 주기기를 공급하는 방식의 국부창출도 전망이 밝습니다. 두산은 미국 NuScale, X-energy 등에 투자하고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노형이 상용화 되면 결국 가장 돈을 많이 벌수 있는 중공업을 우리가 맡게 됩니다.
Q. 지난달 25일부터 27일까지 추계 학술발표회가 열렸습니다.
A. 학술발표회는 그야말로 학술을 논하는 것이 주력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응용학문으로서 정책적인 사안도 중요하지만 구분은 확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원자력이 서 있다가 다시 가게 됐기 때문에 발생될 수 있는 시스템적 문제를 파악할 필요 가 있습니다. 이에 이번 추계 학술발표회는 학회다운 학회가 되도록 꾸몄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탈원전 정책으로 붕괴된 시스템이 있습니다. 파악된 것도 있고 아직 안된 것도 있습니다. 이를 복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탈원전을 왜 맞았는가 하는 문제도 우리가 스스로 성찰해야 합니다. 단순히 소통부족 이상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학회는 실질적으로 집행하는 능력이 있는 기구는 아니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문제의식을 제시하고 공유하면서 소속된 기관에서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구라고 보며 그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학회는 실행력 있는 기구가 아닙니다. 반면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조직입니다. 탈원전의 시기에는 원자력 외부에 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했는데 지금은 내부에 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원자력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 국내적인 상황과 세계적인 상황에 어떻게 맞춰가야 하는지, 원자력계 내부의 문제가 무엇인지 성찰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일이 중요한 일입니다.
또 사회적 현안이 발생했을 때, 전문가 집단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가 대표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 집단이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합니다.
학회가 학회다운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학술활동을 제대로 해야합니다. 그간 학회는 회원수가 6,000여 명에 육박할 만큼 양적인 성장을 이뤘습니다. 꽤 큰 학회입니다. 게다가 산업체 등 기업회원도 많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학술적으로도 그렇게 성장했느냐? 이건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물론 KNS의 학술지인 NET(Nuclear Engineering Technology)는 원자력부문 세계 5위의 학술지가 됐습니다. 미국 학회지보다도 Impact factor가 큽니다.
그러나 학술대회는 보다 수준을 높일 여지가 많습니다. 또 Fast follower에서 First mover로 갈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회의적입니다.
50여년의 원자력역사에서 누적된 문제점들도 해소되지 않은 상태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에 대해 학회가 해소할 수 없어도 논의하고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훈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