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 도입 배경
지난 몇 년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상황은 에너지의 공급 차질을 가져왔고, 이로 인해 전통적인 에너지에 대한 공급안보의 인식이 높아졌다. 얼마 전 제정된 국가자원안보 특별법도 이러한 의미에서 국내외 현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탄소중립은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산업과 정책에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탄소중립이 추구하는 기후변화 대응은 전쟁처럼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중립(carbon neutrality)’이라는 정책방향을 설정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 역시 2020년 10월 넷제로(Net-zero)를 선언했으며, 2021년 11월 1일 COP26에서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상향안을 국제사회에 발표했다. 그동안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도 함께 증가해 왔던 한국은 앞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급격히 감축해야 하는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기후변화라는 전쟁에 맞서는 주요국들의 탄소배출 추이와 비교할 때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 및 화석연료 중심의 중앙집중식 전력공급 등 탄소중립 달성에 있어 구조적인 취약성을 보이는 우리나라는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 화석연료 사용 감소와 더불어 산업 전반적인 구조 혁신이 요구된다.
IEA(2021)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 중에서 전력화가 배출량 감축에 가장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이러한 전력화는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저탄소 에너지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전제하고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발맞춰 그동안 석탄과 원자력을 중심으로 전력을 공급해오던 우리나라의 전원구성에서 재생에너지의 비중 증가가 요구된다. 재생에너지는 지역단위 에너지 생산·소비 일치를 위한 지역 주도형 분산에너지 시스템으로 도입되면 중앙계통의 문제가 발생할 때도 분산된 계통은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해진다.
또한, 독립적인 에너지 생산·소비를 통해 대규모 발전소 건설·대규모 송전선로 건설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 순기능을 갖는다. 아쉬운 점은 재생에너지가 기존의 대규모 전원과 달리 수요지 인근에 설치할 수 있으므로 분산형 전원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을 기대했지만, 현실적으로는 대규모 설비와 마찬가지로 수요지와 원거리를 중심으로 보급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전력의 공급량과 수요량의 지역별 차이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 남쪽에서 발전해 수도권으로 송전하는 북상조류의 형태는 더욱 강화되고 있어 송전선로의 보강이 요구되고 있다.
이제 재생에너지의 양적 확대에서 진정한 의미의 분산에너지 시스템의 확대라는 질적 성장이 필요한 시기이다. 2000년대 초반 Top-Down 방식의 전력시장 구조개편이 진행된 이후에도 전력시장에는 혁신이 발현되지 않았으나, 재생에너지라는 소규모 사업자의 전력시장 참여는 Bottom-up 방식으로 시장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어, 이러한 분산에너지 시스템의 전력시장 유입이 그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한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이 2023년 6월 13일에 제정되어 오는 6월 14일 시행 예정이다.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의 주요 내용과 전력시장의 변화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이 전력시장에 미치는 변화는 크게 시장의 주체인 수요자와 공급자 그리고 정부의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여기에서 정부는 분산에너지 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분산된 정부 즉 지역자치단체의 역할에 관한 내용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분산에너지에 대한 정의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분산에너지는 기존에 전기사업법에서 정의하는 분산형 전원에서 중소형 원자력 발전사업(SMR) 분산에너지 통합발전소사업(VPP), 신재생에너지사업(PPA), 연료전지발전사업, 수소발전사업, 저장전기판매사업, 소규모전력중개사업 등 구체적인 사업을 제시하면서, 비 전력부문인 수소, 전기자동차, 열에너지 등 다양한 자원들을 좀 더 포괄적으로 포함하는 섹터커플링의 개념까지 포함하게 됐다.
공급자의 측면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분산에너지를 활용해 통합발전소(Virtual power plant, VPP)란 소규모 분산에너지를 통합해 단일 발전소의 형태로 전력시장에 거래할 수 있는 형태로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의 주요 내용 중 공급자 측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제도이다. 현존하는 분산자원들은 통합된 관리체계 없이 산재하여 급전지시 없이 발전 중이고, 이들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소규모 전력중개사업자 제도가 존재하나 그 역할은 수요관리사업으로 제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력거래소는 지난해 8월 ‘전력시장 제도개선 제주 시범사업 운영규칙’을 전력시장운영규칙에 추가했다. 제주도를 기반으로 전력도매시장형 VPP 구성을 위한 시범사업을 위한 규칙개정이다. 전력시장운영규칙은 전력도매시장의 운영만을 규정하고 있지만, 향후 특화지역에서는 전력 직접판매형 VPP로 소매시장으로 그 범위를 확대해 나가는 방안까지 검토할 수 있다.
전력 수요자의 측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산에너지 설치의무’와 ‘전력계통영향평가’일 것이다. 신규 대규모 전력소비자에게 분산에너지 설치의무는 의무지역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택지개발, 도시개발, 혁신도시 및 산업단지 등 신규 대규모 전력소비가능 지역을 중심으로 선정하게 된다. 그러나 분산에너지가 재생에너지에 국한되지 않고 SMR, 지역난방으로 확대 정의되어 있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로 분산에너지원들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분산에너지의 설치의무는 지역별·연도별로 차등적용 하는 형태로 그 의무 부담을 완화하면서 확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즉 지역의 전력자립률에 따라 설치의무가 강화될 가능성도 존재하며 도입 초기에는 낮은 의무 비율이 부과될 수 있겠지만, 점진적으로 설치의무는 확대될 것이다.
전력계통영향평가는 계통영향평가 지역에서 대규모 전기를 사용하려는 사업자에는 희망사업에 대해서 승인·인가·허가 또는 지정 전까지, 산업부에 전력계통영향평가서를 제출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은 수도권에 집중돼 거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도권 인근의 계통포화지역에 대규모 전력소비자가 새로이 들어서는 경우, 전력공급 능력이 부족하거나 계통혼잡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사업자가 사업계획을 승인받기 위해서는 계통영향평가를 통과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거나 계통혼잡이 덜한 지역으로 이전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어, 전력수요의 지역 분산이 기대된다.
전력 수요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는 지역별 전기요금에 관한 조항도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전국이 같은 전기요금제를 적용받고 있지만 분산형에너지활성화특별법에는 송배전 비용 등을 반영해 지역별로 전기요금에 차등을 둘 수 있도록 한 조항이 존재한다. 지역별 전기요금의 차등은 전력 다소비 수요자가 상대적으로 송배전요금이 낮은 기존 지역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한다. 송배전요금이 전력을 생산하는 지역이 낮다는 가정하에 분산에너지의 장점이 극대화될 것이 기대된다. 다만 전기요금의 차등화가 현재 전기요금 수준에서 더 낮은 요금을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기요금제도는 정상화가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송배전요금이 낮은 지역이 상대적으로 낮은 요금 상승률이 적용되는 수준에서 적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력시장에도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이란 수요자와 공급자간 거래를 통해 가격이 형성되는 과정 자체를 의미한다. 전력시장은 주식시장처럼 전력수요자와 공급자가 거래소를 활용해 거래가 이뤄진다. 이러한 거래소는 실질적으로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켜 전력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운영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지금까지 전력시장에서는 도매시장 참여자를 통해서 송전망을 중심으로 전력시스템을 운영해 왔지만, 분산에너지의 확대는 배전망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운영을 책임지도록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재생에너지 확대로 배전망에 연계되는 분산에너지가 증가함에 따라 배전망에 대한 능동적인 운영을 시행하는 관리체계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이다. 배전사업자는 분산에너지를 원활하게 배전망을 통해 공급할 수 있도록 적합한 설비 설치·관리하고, 사업지역 내 분산에너지에서 발전된 전력에 대한 출력 예측·감시·평가 등을 통해 전력계통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하므로 송전망운영자와 밀접한 연계가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과 관련하여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이 필요하다. 분산에너지를 위한 수요자와 공급자가 경쟁할 수 있는 운동장을 마련하는 역할로 이해할 수 있다. 현시점에서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에서 가장 포괄적인 영향력을 지니는 것은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이다. 현재는 육지와 분리해 운영이 가능한 특수한 형태를 지닌 제주가 분산에너지의 특구 형태로 전력시장운영규칙에서도 별도의 규칙을 적용해 시도하고 있다. 제주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의 발전량 등으로 자급률이 높은 지역은 분산에너지 활성화가 가능한 계획을 수립해 특화지역 지정을 도모할 수 있다. 이는 민간과 지자체가 직접 준비해 특화지역 지정을 신청할 수 있다.
산업부는 분산에너지진흥센터를 지정하고, 지자체의 경우 분산에너지사업자에게 보조·융자를 안내하고 지원할 수 있는 분산에너지지원센터를 설치할 수 있다.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의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지역을 특정하고, 전력의 수요와 공급의 계획을 세워야 하는 만큼 선제적으로 분산에너지 사업자의 투자계획과 전력수요자의 투자계획이 요구된다. 분산에너지 확보 및 계통영향평가의 규제에서 상대적으로 제약이 낮은 것은 전력수요자에게 장점이며, 분산에너지사업에 대한 보조·융자 유치를 돕는 분산에너지센터의 역할이 활발할 경우 공급자에게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정보가 교류되고 기업들이 분산에너지 시장을 준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위 센터들의 역할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위 센터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전력시장의 새로운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전력시장에 변화가 모두 한순간에 이뤄지기는 어렵다. VPP와 다양한 분산자원이 기존 시스템과 연계되어 운영되기까지, 그리고 전력시장의 가격이 정상화되어 시장 참여자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태의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