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이 제정됐다. 본 법은 원거리에 위치한 대규모 발전소 대신, 소비 지역 인근의 발전소를 중심으로 지역 내 전력을 생산·소비하도록 하는 에너지의 분산화를 장려하는 내용이다. 이 법에 따라 장거리 송배전, 중앙집중식 관리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에너지 생산과 소비가 가능한 지역 관리 전력시스템 구축이 촉진되게 됐다.
원자력발전은 대규모의 전력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왔다. 1970년대 건설된 고리1호기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국내에서 소비되는 전력의 20~30%가량을 값싸게 공급하며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에 기여해왔다. 원자력발전은 이른바 ‘규모의 경제’ ‘중앙 관리’라는 우리나라 성장 동력 철학에 매우 적합한 발전원이었다. 그러나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은 과거부터 이어온 대규모 및 중앙집중식 전력시스템을 탈피하고자 하는 새로운 움직임이며, 원자력발전과는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것으로 일부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원자력 분야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고 변화의 방향에 맞는 새로운 기술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세간에 많이 언급되는 소형모듈형원자로(SMR, Small Modular Reactor)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현재 80여 종의 다양한 SMR이 개발되고 있고 유명 CEO인 빌게이츠의 테라파워에서도 SMR을 개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원자력 분야를 넘어 에너지기술로서 SMR이 큰 기대를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도 ‘중소형원자력발전사업’을 분산에너지사업에 포함했다. 이 ‘중소형원자력발전사업’이 SMR을 활용하는 사업을 의미한다.
SMR 기술은 명칭에서 이 기술의 특징이 표현되어 있다. 기존 원전의 용량을 대형이라 칭한다면 ‘소형’은 이보다 작은 규모의 용량을 활용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의 최신 대형원전인 APR1400이 1,400MWe인데 반해, 현재 개발되고 있는 혁신형 SMR은 1기당 170MWe의 용량을 가지고 있다. ‘모듈’이라는 명칭은 두 가지 특징을 언급하는데, 원자로 자체의 모듈화와 주요기기의 모듈화이다.
원자로 자체의 모듈화란 수요에 따라 원자로를 다수 설치할 수 있다는 것으로 혁신형 SMR의 경우 원자로 4기를 결합해 680MWe의 용량으로 확대가 가능하다. 주요기기의 모듈화란, 현지에서 차례로 제작되는 대형원전과 달리 주요기기 완성품을 공장에서 제작하는 것으로 기존 대형원전의 단점이라 할 수 있는 건설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소형’과 ‘모듈’이라는 특징에서 SMR은 기존 대형원전보다 획기적인 안전성, 다양한 활용성, 투자 용이성 등의 장점을 가지게 됐다. 이러한 특징과 장점이 중소형원자력발전사업, 즉 SMR을 활용하는 사업을 분산에너지로 고려할 수 있는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분산에너지로서 SMR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 우선 소형화로 인해 SMR은 상대적으로 적은 에너지 수요에도 기존 대형원전처럼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즉 데이터센터, 산업단지, 스마트팜 등 일정량의 전력·열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수요에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대형원전과 같이 원전 근방을 방사선비상계획구역(EPZ, Emergency Planning Zone)으로 설정해야 하는 것을 우려할 수 있지만, 이론적으로 SMR은 소형화되고 혁신적인 안전성으로 인해 EPZ가 발전소 부지경계 내(1km 미만)로 설정될 수 있다.
따라서 데이터센터 바로 옆에 SMR이 설치돼 24시간 365일 전력을 공급하는 모습은 곧 현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광경일 것이다. 또한 고온가스 형태는 산업공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공정열(700℃ 이상)을 제공하는 능력을 가진다. 제철·화학 공장에 열을 제공하는 고온가스로에 현재 여러 기업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SMR의 소형화 및 모듈화로 인해 전력계통 연결과 건설이 힘든 지역에 SMR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 평가받고 있다. 현재 오지나 바다 한가운데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이산화탄소를 발생하는 화석발전을 활용하고 있지만 SMR이 이러한 화석발전을 대체해 안정적 전력 공급 및 글로벌 탄소중립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2018년 러시아는 바지선에 SMR을 탑재한 ‘아카데믹 로모노소프(Akademik Lomonosov)’를 개발해 2019년 러시아 최북단 Pevek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국가들도 보다 안전하고 오랫동안 기동할 수 있는 원자력 선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캐나다 앨버타주에서는 오일샌드(돌이나 모래와 함께 굳은 형태의 원유) 채굴지역에 필요한 증기를 공급하기 위해 기존의 디젤발전이 아닌 한국의 SMR, SMART를 배치하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캐나다 역시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 중인데 극한 오일샌드 채굴지역에 설치할 수 있는 무탄소전원 및 분산에너지로 SMR이 가장 적합하다고 평가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탄소중립에 이바지하는 에너지로 재생에너지만 떠올리는 경우가 있다. 재생에너지는 분명한 청정에너지원이지만, 외부요인으로 인해 특히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에 약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태양광 발전은 햇빛이 없는 밤에는 전기를 생산할 수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낮 동안 남는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해 밤에 활용하거나, 부족한 만큼 화석발전기를 돌려왔다. 풍력발전도 바람이 불 때만 전기가 생산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이다. 즉, 재생에너지는 필요할 때 전기가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날씨 혹은 시간에 따라 전력이 생산되는 간헐적 에너지원이라 보조하는 발전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여기에 안정적인 공급을 담당하는 SMR 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 근래 개발되는 SMR은 기존 대형원전과 다르게 전력을 자유로이 조절하는 부하추종 능력을 보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교한 출력 조정에서는 가스발전, 에너지저장장치 등에 비해 떨어질 수 있지만, 다양한 활용성으로 부족한 능력을 보강할 수 있다.
특히 원자력발전 과정에서 생기는 열을 태양광이 활발히 운영되는 시간대에 수소 생산에 활용하면, 전기 및 수소의 안정적 공급에 특화된 분산에너지 지역을 그려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고온가스로는 고온수전해 기술이 요구하는 열을 충분히 생산할 수 있어, 이를 활용하면 수소 생산을 주력으로 하는 분산에너지 지역이 탄생할 수도 있다.
미래에너지의 게임체인저로 평가받는 SMR은 2030년 전후로 실물화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원전을 소형화한 개념인 경수형 SMR은 러시아, 중국, 캐나다 등에서 실증 단계에 돌입했으며, 대형원전과 다른 방식으로 발전하는 비경수형 SMR의 연구개발도 세계적으로 치열하게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경수형 SMR 중 SMART 기술은 2012년에 설계인가를 획득했으며, SMART 개발 역량을 바탕으로 혁신형 SMR의 개발이 2030년 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SMR 기술개발과 함께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과 같은 제도적 환경과 산업체계가 잘 정비되면, 우리나라의 분산된 지역에 안정적이고 청정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분산에너지 SMR을 곧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영우 한국원자력연구원 경제성분석실 실장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