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과학적 원리를 통해 경제를 부흥해 온 가장 중요한 사건은 석탄을 연료로 하는 증기기관의 발명을 통한 산업혁명이다. 가축의 힘을 빌려서 일을 시키거나 간단한 풍차와 수차를 이용해서 에너지를 얻는 정도에서 비약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면화방직과 수송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고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이룰 수 있었다. 석탄을 이용한 증기기관에서 제임스 와트와 그 제자인 윌리엄 머독이 석탄에서 가스를 추출하여 팽창 폭발시키는 내연기관을 발명하면서 비약적으로 에너지의 효율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1900년대 초반에 석유가 대량 발견되면서 액체인 석유를 통해서 언제든지 이동이 가능한 에너지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이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석유라는 자원이 가장 주요한 에너지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천연가스가 개발되면서 난방과 발전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천연가스는 기체여서 이동하려면 액화해서 배를 태워 장거리 이동하거나 단거리에서는 기체상태로 수송배관으로만 이송이 가능하다. 그래서 LNG(Liquefied Natural Gas)는 여전히 고가의 에너지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 무기로 개발된 원자폭탄이 원자력 발전으로 진화하며 화석연료가 아닌 새로운 밀도 높은 에너지원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나라별 기술적 한계와 위험성 등으로 인해 전체 에너지원의 10%도 차지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최근에 가장 중요한 자원은 당연히 태양광과 풍력을 통한 전기 생산이다. 실제로 2023년 가장 증가한 발전원이 태양광발전이다. 무탄소이며 연료비가 없는 자원이기 때문에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에너지로 등장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새로운 에너지의 등장과 경제적인 효율화의 과정이었다. 지구온난화라는 인류가 해결해야 할 새로운 문제가 글로벌 핵심 어젠다로 등장했다. 이러다 보니 화석연료는 지구온난화 물질인 CO2를 생성하기 때문에 화석연료 사용을 중지하고 무탄소 청정 전기화를 통해서 에너지를 생산해야 하는 상황이다. 화석연료는 지금까지 가장 저렴한 에너지원이었으나 이제는 사용할 수 없고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기후위기를 대응해야 한다고 대부분 수긍하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꼭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첫 번째로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은 청정전기화로 열에너지와 수송에너지를 모두 대체해야 한다는 점이다.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열에너지가 50%이고, 수송에너지가 30%이며, 전기는 고작 20%에 불과하다. 철광석을 녹이고, 석유화학산업에서 플라스틱을 얻거나 화학섬유를 얻는 과정, 그리고 식량생산에 사용되는 질소계 비료까지 모두 화석연료에서 얻고 있다. 80%의 다른 에너지를 전기로 모두 대체하려면 그리고 재생에너지만으로 대체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전기가 사용돼야 할지 단순히 대체한다고 해도 5배 정도의 전기 사용이 필요하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궁극적 목표는 전기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고 재생에너지로 모든 전기를 생산할 수 있으면 가장 옵티멀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남의 나라 화석연료는 언제든지 가격을 지불하고 언제든지 조달이 가능한 에너지였던 반면 남의 나라 태양광과 풍력은 빌려올 수도 사 올 수도 없는 에너지라는 점이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로 대변되는 화석연료는 값을 지불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사 올 수 있는 에너지원이다. 특히 석유는 액체이기 때문에 어떤 용기에 담아도 되고 어떤 이송수단을 태워서도 조달이 가능하다. 하지만 태양광과 풍력으로만 에너지를 만들어야 한다면 지리적 위치가 가장 중요한 에너지 조건이 된다. 사막이 있는 일사량이 좋은 나라, 옆으로 길어서 시간대가 여러 개인 나라는 태양광을 하면 된다. 북극과 남극권의 바람이 좋은 나라는 풍력을 통해 충분한 시간 동안 전기 공급이 가능하다. 화석연료 자원의 부존에 따라 득실이 달라지지만 사 올 수는 있는 에너지의 세상에서 나라별로 그 위치에 따라 완전히 위치 이동이 불가능하고 조달이 불가능한 재생에너지 자체만으로 에너지를 생산해야 한다면 이는 극복이 불가능한 에너지 불평등 조달 환경이 되는 것이다.
세 번째로 화석연료는 열에너지, 수송, 전기에너지를 동시에 발생시킬 수 있고, 자동차, 배, 항공기 등을 이용해 서 이송 방식의 다양성이 존재하고 특히 액체인 석유는 어디든지 갈 수 있지만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진행된다면 전기에너지가 유일한 에너지원이 되고 전기에너지에 국한되게 된다. 전기는 송전망이 없이는 이송이 불가능한 에너지다. 기본적으로 전력망으로 전 세계를 뒤덮을 수 있어야 에너지 불평등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재생에너지가 지리적으로 국한되는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태평양과 에베레스트를 뛰어넘는 전력망을 깔 수 있어야만 재생에너지의 불평등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말한 세 가지는 글로벌 에너지 불평등의 원인이 된다. 이제는 그 나라의 자연환경이 모든 것을 결정하며 국토의 면적이 넓은 나라가 기본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된다. 글로벌에서 재생에너지만으로 전기를 생산해 물건을 만들라는 민간단체의 RE100 친환경 운동은 일면 인류의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해결이 불가능한 에너지 불평등을 가져오게 된다.
우리나라처럼 시간대가 한 개이고 풍속도 7~8m/s에 불과한 나라는 재생에너지만으로 산업체가 사용하는 전기를 모두 공급할 수 없고, 다른 나라에서 사 올 수도 없고, 전력망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제조업 비중이 GDP의 30%를 차지하고, 대부분이 에너지 다소비 산업이며 주력 수출산업으로 구성된 중간재 생산국인 우리나라는 더 이상 에너지 불평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전기 먹는 하마인 반도체는 RE100을 달성할 방법이 없는데 유럽을 중심으로 친환경 기후압박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코크스를 사용해서 1,500도 이상을 올려서 철광석을 녹이는 철강산업은 이제 전기로로 모두 바꿔야 하고 재생에너지만으로 전기로를 가동하면서 RE100을 달성해야 한다. 석유화학에서는 화석연료를 원료로 사용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바이오 원료 등을 개발해야 한다. 이러한 원료의 문제는 연료 대체와는 차원이 다른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비행기를 항공유가 아닌 다른 바이오 연료로 대체하기 위한 연구는 진행되고 있지만 글로벌 사용량을 감당하기에는 티끌만큼도 되지 않는다. 이런 주장이 점차 강해진다면 국내 산업이 RE100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환경이 좋은 외국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우리 주력산업인 반도체,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을 지킬 수 있을까?
EU는 탄소국경조정(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을 제도화하고 있다. EU에 수출하는 국가나 사업체는 수출품에 내재된 CO2 배출량을 측정하고 그에 상당한 배출권가격 차이를 더 부담하라는 탄소가격을 통한 무역구조 변화를 꾀하고 있다. 겉으로는 지구온난화를 막고 카본누출 산업이 해외에서 값싸게 생산하지 못하게 한다는 명분이나 속으로는 EU가 경쟁력을 잃어버린 제조업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보호무역적 속셈이 강하다. EU는 제조업이 이미 쇠퇴한 지 오래이고 경쟁력을 되찾으려면 EU가 이미 고가로 지불하고 있는 탄소가격을 다른 경쟁국에도 부과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CBAM의 결과는 그들의 의도와는 다를 것이다.
EU는 거의 수출산업이 없고 수입품으로 연명하는 국가가 대부분이다. 금융이나 농업이 주력인 국가가 많아서 제조업 수입품에 CBAM을 하면 수입품 가격이 올라서 인플레이션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산 물건이 차별을 당하기보다는 러시아, 인도, 튀르키예 제품이 더 피해를 볼 것이고 EU는 빈번한 수입품 가격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외국산을 공격하려다가 되려 자충수가 된다는 뜻이다. 정치적 이해득실 과정으로 진행된 EU의회의 CBAM 결정은 결국 자유무역을 저해하고 EU 저소득층과 빈곤층의 빈곤화를 가속화하게 될 것이다.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둘러싼 이러한 기본적인 원리와 이해관계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 최근에 제정된 EU의 탄소중립산업법(Net-Zero Industrial Act) 등은 모두 친환경 산업을 자국산화해 제조업 부흥을 노리는 보호무역주의의 일환이다. 자유무역이 가지고 있던 자유롭고 값싼 물건과 인력의 이동은 이제 더 이상 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지구온난화는 전 인류 공동의 문제인데 해결책은 이기적인 일국의 보호무역으로 흐르고 있다. 지구온난화는 EU와 미국 등의 현재 선진국이 산업혁명 이후로 발전하면서 내뿜은 누적 CO2의 결과인데 해결은 이제 좀 먹고살게 된 동북아시아 제조업 보고 책임지라고 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 국가들은 생산을 담당할 뿐 소비는 EU와 미국이 다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소비를 줄일 생각은 없고 생산을 더 깨끗이 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게 현실이고 이게 실체이다.
원단위로 가장 깨끗하고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제조업을 지키고 국내에서 경영과 공장 운영을 계속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도 공정한 무역구조 회복을 위해 통상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RE100, CBAM,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등 외부의 압박에 국가적 이익을 위해 적극 대응하고 국내 산업이 피해 보지 않도록 제반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운 속셈은 보호무역주의를 통한 그들 산업의 보호임을 간파하고 우리도 자국산업 보호와 친환경 산업의 자국 산업화를 추구하면서 공정한 무역과 통상을 위한 대응을 할 때이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