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징후나 예고도 없었다. 지난달 12일 개봉한 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2’(감독 켈시 맨)의 주인공 라일리(켄싱턴 톨먼)는 어느 날 갑자기 사춘기를 맞이한다. 라일리와 라일리의 감정들은 하룻밤 사이 격해져 버린 감정의 소용돌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난감해한다. 언젠가 이날이 올 줄 알았던 라일리의 부모와 사춘기를 이해하는 관객들은 이 모습을 침착하게 지켜본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내면의 변화가 어떤 재앙을 불러오는지 ‘인사이드 아웃 2’는 라일리의 2박 3일을 따라가며 극적인 이야기로 풀어낸다.
라일리의 변화를 가장 크게 체감하는 건 라일리 내면에 존재하는 감정들이다. 경고하듯 시끄럽게 울리는 사춘기 버튼을 저 멀리 날려 보내도, 내부 공간에 대공사가 일어나는 것이나 ‘나는 좋은 사람’이란 라일리의 기존 신념이 버려지는 걸 막을 수 없다. 결국 새로 합류한 감정들에게 계기판의 주도권마저 빼앗긴다. 감옥에 갇힌 기쁨이는 버려진 신념을 되찾아 라일리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는 계획을 세운다. ‘나는 부족해’라는 라일리의 목소리가 내면세계에 울릴수록,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기쁨이의 생각은 확신으로 변해간다. 자신이 사춘기가 됐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라일리가 겪는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1편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이사 간 라일리가 낯선 환경에 적응해 간 것처럼, 2편에선 중학교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의 이별을 받 아들이면서 입학할 고등학교 선배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라일리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친구들을 외면하는 선택이 옳은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고등학교 아이스하키팀에 뽑히기 위해 새벽부터 연습에 매진한다. 선배들의 걸음걸이와 헤어스타일을 따라 하고 좋아하던 밴드를 좋아하지 않는 척하기도 하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에서 들리는 목소리엔 귀 기울이지 못하면서 점점 혼란에 빠져든다.
라일리와 라일리의 감정들이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은 관객들에게 유쾌하고 신나는 모험의 형태로 전달된다. 라일리의 눈을 통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라일리의 감정들과 스크린을 통해 제3자의 시선으로 보는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이야기는 같지만 맥락이 다르다. 라일리의 감정들은 난생처음 겪는 일에 당황하고 힘들어하는 라일리의 모습에 깊게 이입하지만, 관객들에겐 어떻게 극복할지 흥미롭고 유머러스하게 느껴진다.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다 잘 해결될 거란 믿음 덕분이다. 라일리의 부모가 라일리의 감정이 격해진 원인을 짐작조차 못 하면서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것 역시 비슷한 이유다.
성장 과정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겪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감정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흥미롭고 신선한 이야기로 보여주는 것. 이는 9년 전 개봉한 ‘인사이드 아웃’에서 이미 선보인 방식이다. ‘인사이드 아웃 2’는 1편에서 전 세계 많은 관객에게 사랑받은 구조를 반복하며 익숙한 즐거움을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감정들의 대장인 기쁨이가 컨트롤 타워로 다시 복귀하는 과정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나 기쁨이가 좋은 감정만 선별한 것이 문제의 원인이었다는 교훈, 라일리가 위험한 행동을 저지르는 장면이 가장 큰 위기로 다뤄지는 구성 등 상당수 설정과 전개 등이 2편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1편에서 신선한 재미로 느껴진 요소가 2편에선 시리즈라는 걸 확인해 주는 하나의 규칙이 된 것이다.
대신 ‘인사이드 아웃 2’는 라일리가 겪는 위기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시도한다. 1편에서의 위기가 라일리 내면의 우정섬이나 가족섬, 엉뚱섬 등이 무너지는 정도였다면, 2편에선 ‘나는 부족해’라는 새로운 신념의 목소리가 라일리 내면세계 전체에 울리며 위험 신호를 보낸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쌓아온 내면의 무언가가 무너진 것보다, 달라진 신념이 더 큰 위협으로 느껴지는 건 그것이 라일리의 미래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불안과 부정적인 신념에 지배당한 라일리가 겪을 어떤 미래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라일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 역시 전보다 강화됐다. 슬픔이를 외면하고 부정하려 하던 기쁨이가 결국 그를 끌어안고 받아들이는 1편의 이야기의 중심이 갈등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기쁨이도 슬픔이를 이해하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고, 슬픔이 또한 자신이 왜 그러는지 설명하기 어려웠을 뿐이었다. ‘인사이드 아웃 2’에선 강한 의지와 확신을 가진 불안이와 기쁨이의 대립이 강조된다. 빠르게 권력을 손에 쥔 불안이의 신념에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는 점이나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점 등은 그동안 봐왔던 빌런의 모습과 비슷하다. 외부에선 감정들 사이에 일어난 잠깐의 소란이자 곧 해결될 문제로 보이지만, 내부에선 반드시 물리쳐야 할 거대한 악의 등장으로 다뤄진다.
빌런의 등장은 내면의 갈등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으려는 의도로 읽힌다. 두 편의 시리즈를 통해 라일리가 일상에서 변화나 성장으로 겪는 외부의 사건들과 내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동등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 이는 ‘인사이드 아웃’이 단편이 아닌 시리즈로 자리 잡는 과정이기도 하다. 라일리의 감정들이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존재하고 성장하려면, 그들이 라일리에게 종속되지 않으면서 내부의 사건에 의미가 부여돼야 한다. 기쁨이가 슬픔이를 끌어안고, 불안이를 다독이는 순간들이 라일리가 더 나은 선택을 하는 순간만큼 관객에게 깊이 기억되는 방법이다.
‘인사이드 아웃 2’ 오프닝에서 기쁨이는 라일리에게 지난 2년간 있었던 일을 직접 소개한다. 라일리가 1편의 사건 이후 얼마나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했고 좋은 사람으로 성장했는지, 가족과 친구들의 관계가 얼마나 좋은지 등을 마음껏 자랑한다. 그리고 기쁨이가 라일리의 좋지 않은 기억들을 장기 기억 저장소가 아닌 어둡고 먼 곳으로 버리는 장면이 곧바로 이어진다. 기쁨이가 라일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라일리를 위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지만, 동시에 그의 말을 온전히 신뢰하기 어렵다는 의미도 된다. 과연 2년 동안 라일리에게 행복한 일들만 일어났을까.
라일리 엄마의 버럭이 캐릭터가 말했듯, ‘인사이드 아웃 2’에서 벌어진 일은 앞으로 라일리의 10년을 보여주는 예고편일지 모른다. 아무리 기쁨이가 왜곡해도 앞으로 라일리에겐 다양한 어려움과 잘못된 선택 등 더 많은 행복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감정이 더 극단으로 치닫거나 지금처럼 위기를 잘 극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슬픔이와 버럭이가 감정의 대장을 맡고 있는 라일리의 부모처럼 언젠가 다른 감정이 라일리 내면의 대장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괜찮다고 느낀다면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라일리의 성장 과정을 목격하는 기쁨, 라일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 라일리가 어떤 모습이어도 괜찮다는 사랑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어쩌면 그것이 ‘인사이드 아웃 3’를 기다릴 이유이자, 이 시리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이지 않을까.
이준범 쿠키뉴스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