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말 발표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11차 전기본) 실무안은 시장개념을 일부 도입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시도를 선보였다. 즉,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계획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무탄소전원을 확대해야 하는데, 무탄소전원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도 달라서 일률적으로 발전원을 특정하지 않고 시장원칙에 의해 선정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2025년 무탄소전원 입찰시장을 개설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전력수급기본계획은 비록 초안일지라도 일단 모든 발전원에 대한 구성비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11차 계획 실무안에서는 이에 대한 전망치만을 제시했고 구체적인 전원구성은 무탄소전원 입찰시장에서 결정되는 바에 따르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무탄소전원 입찰시장의 개념을 도입한 이유는 무탄소전원에 대한 입장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원자력계는 원전을 가장 경제성이 높고 또한 탄소도 배출하지 않기 때문에 탄소중립 시대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전원으로 꼽는다. 또한 원전의 경제성을 따질 때 폐로비용과 방사성 폐기물 처리비용까지 반영해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반원전 그룹에서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경우를 언급하면서 원전 사고 시의 비용 그리고 폐로비용까지도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수소, 암모니아 및 탄소포집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다. 현실적 에너지전환을 강조하는 전문가들은 수소 및 암모니아 혼소방식을 LNG 및 석탄 등의 화석연료를 자연스럽게 퇴장시킬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연착륙형 기술적 특성으로 간주한다. 반면, 탄소중립을 하루빨리 이루고자 하는 환경론자들은 이들을 화석연료 발전설비를 연명하고 기회가 되면 이를 다시 되살리기 위한 수단이라고 의심한다.
11차 전기본의 15년 기간이 적용되는 마지막 해인 2038년의 국내 최대 전력수요를 실무안은 129.3GW로 전망하고 있다. 그 이유는 AI의 영향으로 반도체와 데이터센터의 전력수요가 2030년에 2023년의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적정 예비율 22%를 감안하였을 경우 필요한 발전설비 용량은 157.8GW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전원구성 이전에 사실 전력수요 전망부터 환경론자들과 현실론자들의 입장차이는 크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강력한 대책을 촉구하는 환경단체들은 11차 전기본 실무안이 지나치게 전력수요의 급증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환경운동연합은 11차 전기본 실무안이 수요관리는 하지 않으면서 발전소만 건설하겠다는 방안이라고 비판한다. 나아가서 이와 같은 전력수요 전망이 거꾸로 대형 원전을 짓기 위한 수요예측이라고 의심한다.
이처럼 상이한 입장을 합리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방안은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결정하는 어떤 방안도 다른 대안의 희생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견해를 균형 있게 반영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달성하기 어려운 정책적 목표이다.
전력수요 전망을 인위적으로 늘리거나 줄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한전 부채를 200조원 이상으로 늘려가면서까지 전기요금을 억제하면서 전력수요의 급등세를 막고 수요관리를 규모있게 시행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11차 전기본을 끝으로 정부가 향후 15년의 발전원 구성계획을 일시에 발표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정책적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순수한 전력수요 전망치를 제시하고 정부는 시장원리와 발전사업자의 책임하에 발전원을 하나씩 결정해 나가는 방식을 택해야 할 것이다. 11차 전기본이 이를 위한 중간단계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조성봉 전력산업연구회 회장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