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시절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가장 큰 우려는 향후 전력망의 물리적 확장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었다. 밀양 송전탑 사태 등과 맞물리면서 망 추가 건설과 수도권 환상망의 운영상 어려움이 예상됐다. 그 결과 분산화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시기이기도 하다. 분산화는 비용의 상승, 운영상의 어려움 그리고 작은 갈등의 전국 확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간의 많은 장점을 포기하는 선택이기도 한 것이다. 이는 환경단체가 요구하는 민주적 해법이라는 접근과는 다른 관점이었다.
당시 그 계획에 참여한 바 있는 당사자 중 한 명으로서 2차 에기본의 핵심은 원전 비중 합의도출보다 분산화에 대한 원칙의 설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부가 내부 논의를 통해 후속조치를 하지 않아 망 건설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중앙집중형의 문제점이 그대로 확 대되는 동시에 대안을 찾는 노력도 실종된 시기였다. 분산화는 지난 정부에서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분산화와 전력망의 전담부서를 설정할 만큼 관심을 기울인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근본적인 해법 도출에 노력하지 않고 분산자원의 확대와 같은 프로그램 기반의 접근으로 한계를 노출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현재는 제한송전이 일상화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지금부터라도 망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기술적 그리고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망의 혁신 없이 소소한 계통 관련 BM들의 추진 등은 문제를 계속 악화시키고 문제를 부풀리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우리의 정책 실패라기보단 전 세계적인 공통의 애로사항이므로 분명히 해결해야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제 선제적인 자세로 기술 논의와 사회적인 담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망이 없으면 AI도, 반도체도, 방산산업도 모래 위 성에 불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진솔하고 용감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김창섭 전기저널 편수위원장 가천대학교 교수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