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 말은 가을 수확의 풍요로움을 표현한 말이다. 과거 추석의 의미는 풍년 농사와 조상에 대한 감사의 의미였다. 오늘날에는 그런 의미보다는 핵가족 시대에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오랜만에 만나 정을 나누자는 의미가 더 커졌다.
추석(한가위)은 농경사회였던 예로부터 지금까지 한국인에게 중요한 명절이다. 조선 순조 때 학자인 홍석모(洪錫謨)가 쓴 조선의 세시 풍속서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849)’에는 추석을 신라 때부터 있던 풍속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추석 및 8월의 세시풍속으로 ‘술집에서는 햅쌀로 술을 빚어 팔며 떡집에서는 햅쌀 송편과 무와 호박을 넣은 시루떡을 만든다’고 했다. 여기에서 언급된 햅쌀(신도 新稻, 새로운 쌀)로 빚은 술, 즉 신도주 (新稻酒)는 새로 수확한 쌀로 술을 빚는다는 의미가 중요했다. 새로 수확한 곡식으로 술을 빚어 조상과 이웃에게 감사하면서 수확의 기쁨을 함께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집에서 햅쌀을 이용해 신도주를 만들어 차례에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은 상업적으로 만들어진 술들을 사용한다. 그래서 차례라는 중요한 의식에 귀한 술을 사용하려 한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차례에 사용됐던 술들 중에는 일본식 제조 방법을 이용한 술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특히, 명절을 전후로 해서 시장에서 판매되는 술 중에 이러한 술들이 많다.
추석 또는 명절에 사용해 온 술 중 하나가 ‘정종’이라 불리는 청주(현재 주세법상 청주는 일본식 사케를 지칭)였다. 현재에는 제품명을 사용하기에 ‘정종’이라는 이름을 가진 술은 없다. 정종(正宗)은 1840년 일본의 한 양조장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술이다. 정종이라는 제품이 인기를 끌자 여러 양조장에서 제품에 상표명으로 사용했다. 여러 양조장이 사용하다 보니 일반 명사화되어 어느 양조장에서나 사용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883년, 부산의 이마니시 양조장이 조선 최초의 일본식 청주 공장을 세우고 정종(正宗)이란 청주를 생산했다. 이후, 정종(正宗)이라는 브랜드를 앞세운 술들이 지역마다 등장했다. 서울 만리동에 미모토정종(三巴正宗), 마산의 대전정종(大典正宗)과 정통평정종(井筒平正宗), 부산의 히시정종(菱正宗)과 벤쿄정종(勉强正宗), 대구에 와카마즈정종(ワヵマツ正宗), 인천에 표정종(瓢正宗) 등 외에도 많은 양조장에서 ‘정종’을 생산했다.
일제강점기부터 인기를 끌며 고급술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던 ‘정종(청주)’은, 해방 후에도 청주 제조장이 적산(敵産)으로 넘어오면서 ‘정종’이 지속적으로 생산됐다. 그 결과 명절에 조상들에게 올리는 좋은 술로 청주, 즉 ‘정종’이 일반 명사화되어 꾸준히 사용되어 왔다. 아직도 많은 가정에서 ‘정종’ 형태의 술을 우리 술의 하나로 알고 제사에 사용한다. 하지만 최근 누룩을 사용하고 전통 제조법으로 만든 ‘차례주’라는 술의 사용 비율이 늘고는 있다. 이러한 전통 제조법을 이용한 술들을 사용하는 것은 전통주의 소비에 있어 긍정적인 신호이다. 조금 더 나아가 최근 우리 전통주의 관심이 증가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추석에는 다른 형태의 전통주들을 사용해 보면 어떨까 한다.
차례에 어떤 전통주를 사용할지 큰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 차례상에 올라가는 술에 대한 정확한 규정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 조선 시대 왕실의 으뜸가는 행사 중 하나였던 종묘 제례에서도 막걸리와 맑은 술(약주)이 사용됐다. 종묘제례에서는 모두 세 차례 술을 올리는데, 첫 번째 올리는 ‘예제’는 단술(감주)이며, 두 번째 올리는 ‘앙제’는 술을 여과하지 않고 만든 탁한 술(막걸리)을 올린다. 마지막으로 맑은술(약주)을 올렸다. 이번 추석에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전통주들을 구입해 보면 어떨까 한다. 전국에는 지역 전통주들 또는 우리 술(막걸리, 약주, 소주 등)들이 많이 있다. 현재 양조장의 개수만 800개 정도가 된다고 하니 각 도에 적어도 100개 이상의 크고 작은 양조장들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만들어지는 술은 다양한 원료와 제조 방법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지역에 조금만 관심을 둔다면 평소에 마셔보지 못했던 지역 술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 전통주들을 온라인에서 구매해서 사용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전통주를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은 다양해지고 있다. 네이버, 다음 등의 대형 포털 쇼핑몰이나 지마켓, 옥션, 쿠팡, 11번가와 같은 오픈마켓에서 구입이 가능하다.
특히, 지역 전통주는 대형 양조장의 획일화된 맛이 아닌, 지역 특유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역에서 유통되기 위해 지역 사람들의 입맛을 중요시한다. 차례 음식도 지역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차례 음식과 지역 술은 어울릴 수밖에 없다. 또한, 지역 술들은 지역의 농산물을 사용해서 만드는 경우가 많아 새롭게 수확한 농산물을 이용한다는 추석의 취지와도 맞는다. 제사에 사용되는 술은 조상들에게 올리는 거지만 음복이라는 풍습을 통해 우리 역시 좋은 술을 마시게 된다.
이번 추석에는 고향의 향수와 추억을 지역 술에서 찾았으면 한다. 대기업의 술들은 명절 이후에도 쉽게 구해서 마실 수 있다. 지역 마트나 바로 옆 슈퍼마켓에 진열된 지역 술들을 구입하거 나 온라인에서 전통주들을 즐겨봤으면 한다. 새로운 전통주 이야기와 함께 풍성한 추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대형 박사(경기도농업기술원 연구사)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