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전력연구원 고창전력시험센터에는 ‘김정부로’ 라는 길이 있다(2014.10.31 명명). 다른 인명의 길이 몇 곳 더 있는데 모두 우리나라 765kV 초고압 송전연구(이하 765kV)의 선구자들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김정부 前 실장은 그들을 동료 또는 선후배라 불렀다. 세계 최초로 765kV 송전기술이 개발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과거 공군 사격 훈련장이었던 고창군 구시포 해안가의 땅은 765kV 시험선로가 생기고 지금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고창전력시험센터로 변모했다.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던 김정부 前 실장의 목소리를 통해 그 숨은 이야기를 찾아가보자.
1979년도 귀국하고 나서 제가 1971년 한전에 입사했습니다 . 1973년도에 345kV 가 초창기단계고 1976년도에 가압이 되었을 겁 니다. 1978년에는 웨스팅하우스의 AST(Advanced, System Technology) 교육(1979년)에 앞서 어 등 사전교육을 받았죠. 그리고 1979년도에 연수 를 다녀왔습니다 . 그런데 연수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10.26사태 (1979년)로 정권이 바뀐데다, 그 해에는 경제성장 률도 낮았고 전력수요도 이전과 비교해 높지 않았 습니다 . 그래서 송변전 수요도 적고 765kV 송전기 술에 대한 의구심이 들던 상황에서 1980년에 실무 부서로 발령났어요. 그 당시 다시 연구를 할 수 없 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1983년, 기술연구원 에 R&D 자금이 조성되면서 연구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지요. R&D를 중요하게 여겼는지 정부의 방 침이 있었더라고요. 때마침 제가 책임연구원으로 승진을 해서 바로 765kV 과제를 올리고 승인을 받 아서 연구가 시작되었지요. 본격적인 연구는 1984 년부터 시작되었고 2002년 정년 때까지 전력연구 원에서 765kV 연구를 계속했어요. 1980년도 실무부서로 발령날 때, 다행이었던 것 은 초고압 건설사무소 기술부(후에 송변전처로 변 경)로 발령이 나서 연구의 끈을 계속 잡을 수 있었 어요. 1981년도에는 미국 오레곤 주 포틀랜드에서 IEEE에서 주최하는 학술 대회가 열렸는데, 2주간 세미나에 참석하고 정전유도, 절연에 관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 그렇게 교육을 받고 연구한 것들이 지 금의 설계 기준을 만드는 밑바탕이 되었어요. 실무부서에 있으면서 345kV송전선로의 정전유도 현상에 대해 연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 전선에 가 압이 되면 주변에 전계가 형성되는데 이곳에 가까 이 다가가면 몸에 따가운 느낌이 듭니다 . 해결점을 찾기위해 해외 발표 문헌에 따라 지상고 1m에서 전계의 크기를 측정해보니 민원이 들어온 곳의 전 계가 약 5kV/m 습니다 . 이 정도 수치가 되면 사 람이 전계를 느낄 수 있고 자칫 쇼크 등의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안전한 수준인 3.5kV/ m 이하로 감소시키기 위해 지상고를 조정하기도 했습니다 .
실험이 “아주아주” 중요한 이유 일단, 저는 웨스팅하우스 AST에서 초고압 계통의 개념설계에 대해 배웠습니다 . 쉽게 설명하자면 어 떻게 해야 낙뢰에 견디고, 가청소음(AN, Audible Noise)이 55dB(A) 보다 낮은 소리를 내고, 지락사 고가 발생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죠. 이것을 설계하 려면 통계 및 확률분포를 알아야 하는데 정규분포 부터 극한치 등이 활용됩니다 . 1983년에 연구기금이 조성되고 한전 전력연구원에 서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서적을 보면서 연구했습니다 . 그런데 다른 분야도 마찬가 지겠지만 송변전분야는 실험, 실증이 굉장히 중요 합니다 . 실제로 사용되기까지 여러 번 시험을 거쳐 서 입증을 해야해요. 765kV, 2회선은 우리나라가 최초로 성공했는데 다른 어느나라도 2회선을 쓰는 나라가 없어요.
체로 체로 1회선입니다. 그 이유는 어떤 기술이든지 해당 지역에 맞도록 설 계가 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765kV의 경우, 국내처럼 인구도가 높 고 땅이 좁은 나라에 2회선이 아니면 안되겠더라구요. 그래서 실험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실제로 신뢰성과 안정성이 입증되어야 하거든요. 이 실험을 하기 위해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시뮬레이션과 단상 (Single phase)에 대한 실험, 그리고 Full Scale(실제 규모) 실험도 이뤄 져야 했습니다 . 컴퓨터 모의는 1981년에 포틀랜드 학술대회에서 만났던 Mr. Chartier 라고, BPA에 근무하는 이 분야에서 저명하신 분이 있었어요. 이 분께 아직도 참 고마운게 당시 가공 송전선로에서 발생하는 전기환경에 대 해 계산할 수 있는 프로그램 소스 한박스(천공카드)를 우편으로 보 내줬어요. 덕분에 765kV 2회선을 우리나라 환경에 맞춰 계산할 수 있 었죠. 또한 도체를 선정할 때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이 계산이 수행되고 나서, 고전압에서는 실험을 통해 확인을 하는 것 이 중요하기 때문에 먼저 실제 규모 보다 작은 6×6m 규모의 단상 모 의 설비라고 하는 케이지(그림 1 참조)에서 실험을 했습니다 . 당시 이 실험을 하기 위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데는 전기연구원 뿐이라 이 곳에서 실험이 이뤄졌습니다 . 그때가 1986년도습니다 .
최적화를 위한 실험, 실증 반복…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세계 최초 성공, 765kV 2회선!
세계 최초로 765kV 2회선에 도전하다 1986년에서 1987년까지 1단계 연구를 마치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실제 규모의 실험을 진행해야 했는데, 765kV 2회선 송전선로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운전한 경험이 없어 대규모 시험선로가 절실했어 요. 심지어 1단계 연구결과도 AEP 등 해외에서 우리나라를 방문하기 도 할 정도으니까요. 그 때 부지를 선정하는 데 또 에피소드가 있었 습니다.
처음 고려된 부지는 광원자력발전소 구내에 있는 예비군 훈련장 부 지어요. 전기연구원과 공동으로 측량까지 했는데 발전소의 소음 때문에 적합한 부지는 아니었습니다 . 그래도 우리는 이 부지라도 쓰려 고 했죠. 그만큼 이 설비가 아주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한편으 로는 소음으로 실험이 잘못될 우려도 있어서 다른 부지를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 때마침 찾은 곳이 지금의 고창군에 있는 땅이었어요. 광원전이 보유하고 고창군이 관리하는 25만 평 규모의 부지지요. 인가에서도 떨어져 있고 시험부지로 아주 적합했죠. 1989년 한전 전 력연구원이 광원전으로부터 정식으로 이전 받았습니다 . 이렇게 구한 부지에 1990년부터 시작된 2단계 연구과정에서 부지 측 량, 지질조사 등 시험선로 건설을 위한 설계단계에서 문제가 또 있었 어요. 한전 본사에서 이 부지를 불용자산으로 매각하라는 지시가 내 려져버린 거예요. 그래서 서둘러 이 부지의 필요성을 알리는 품의서 를 작성했습니다 . 날짜도 아직 기억하는데 6월 6일 현충일에 문서를 작성하고 다음 날인 6월 7일 하루 만에 그 당시 안병화 사장까지 모든 결재를 다 받았어요. 지금은 안 계시는데, 그 때 변전분야 이동호 전무 께서 문일 부사장을 잘 설득해서 이루어졌습니다 . 그런데 기본설계 때에도 문제가 몇 가지 또 있었습니다 . 먼저 설계비 를 감사실에서 절반 수준으로 삭감하기도 했고, 지질 조사결과 매립 지 이다보니 연약지반이었어요. 설계비 삭감으로 현장에서 가까운 광 주의 한 용역업체를 찾아 기본 설계를 의뢰한 후, 연약지반을 극복하 기 위한 여러 조치를 취했는데 기초의 현장 타설 말뚝(multi-pier)깊 이가 20m가 넘는 곳도 있었죠. 이때에는 현대건설이 강관철탑에 많 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높은 점수를 받아 낙찰되었어요.
1993년 3월 시험선로가 준공되고 나서 전압을 인 가 할 때는 2차 출력 전압이 선로의 충전용량 때 문에 765kV 보다 높게 나왔는데 거의 800kV 수준 이었어요. 그 때 효성중공업에서 자동전압조정기(On Load Tap Changer)를 설계, 설치했는데 한 개의 탭만 단락시키고, 4월부터 시험선로를 운전 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마침내 그 해 5월, 역사적 인 765kV 실규모 시험선로 준공식이 개최되었고, 765kV 2회선 송전선로를 적극 홍보할 수 있게 되었 습니다 . 이때 시험 선로 준공으로 지금의 고창시험 장(현, 고창전력시험센터)이 생기게 되었어요.
이렇게 건설했던 19 8 6년 1단계 코 로나 케이지와 2단계 실제 규모 시 험선로에 약 10 0억 원이 소 요되었고, 경제효과 는 2,10 0억 원으 로 추 정되었다. 765kV 1차 사업의 송전선로 공사비는 1조 1,732억 원이 소 요되었는데, 당시 이 설비들이 없었다면 공사비, 개발비는 이보다 더 증가했을 것이다.
765kV 개발 그 이후 이렇게 진행된 연구결과는 1997년, 2000년에 해외 유력 저널에 실 렸습니다 . 과거에는 발표까지 했어야 했는데 나중에는 승인만 받아 도 저널에 실리더군요. 그리고 Transmission & Distribution은 좀 유 명한 월간지인데 여기에도 수록되었어요(그림 5-1, 2 참조). 이 연구 로 리액터를 설치했을 때 공진현상이 발생하는 것도 발견하고 송 전선의 길이를 160km 이하로 제한하고 리액터를 쓰지 않기로 했 죠. 그리고 160km 이하로 선로를 건설해도 재폐로시 충전전류가 많 아 HSGS(High Speed Ground Switch)라고 하는 것을 설치했어요. HSGS는 순간적으로 충전전류를 땅으로 보내는 장치예요. TNA(Transient Network Analyzer)나 IG(Impulse Generator)는 각각 이탈리아 CESI, 독일 High Volt사에서 도입했는데 이 실험설비 를 건설하고 시험을 진행하면서 기자재들도 많이 개발되고 국산화되 었어요. 한전에서 제조회사에 개발비를 지원하고 개발완료 후 상용 화에 성공하면 개발비를 상환하는 한편, 한전이 다시 기자재를 사들 죠. 이를 통해 효성, 현대 중공업이 GIS 차단기와 변압기를 개발하 는 동력으로 작용했고, 이 같은 선순환적 결과에 따라 해외 수출의 기 반을 마련하기도 했어요. 현재 우리나라의 계통이 발전한데다 낮은 평균사고율로 세계수준의 전력을 공급하고 있고, 이제 HVDC도 연구하고 도입되는 것을 보면 참 기쁩니다 . 앞으로도 지중선, 배전 자동화부터 소프트웨어까지 연 구가 계속 잘 되길 기대합니다 . 당시 765kV가 사용될지 의심하기도 했는데, 1960년대 초 500kV 대신 345kV를 도입한 것을 후회하셨다는 전력계 원로분의 말을 들은 적 이 있어요. 그것 때문인지 이직 등 다른 인생의 전환 기회들도 있었지 만 ‘765kV’라는 한 우물을 판 것이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고 창(전력시험센터)에서는 저 뿐만 아니라 당시 연구에 참여했던 사람 들의 이름을 딴 길도 만들더군요. 저 개인적으로는 광스럽기도 하 고, 다른 한편으로는 보람으로 간직하며 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