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균 前 한국전력 대전전력관리처장
신상균 前 한국전력 대전전력관리처장
  • 변우식 기자
  • 승인 2016.0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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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대한민국 최초의 초고압 직류송전(HVDC)이 도입되다

무려 100년 전 미국에서 벌어진 에디슨과 테슬라의 전류전쟁(War of Currents)은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교류(AC)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전류에 대한 인류의 고민은 멈추지 않았고, 그결과 초고압 직류송전(High Voltage Direct Current) 이란보다 진보된 기술이 등장했다. 1954년 스웨덴이 세계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HVDC는 30여 년이 흐른 1987년국내에 도입되었다. 육지~제주간(100km) 국내 최초의 HVDC가 완공되기까지 HVDC의 국내 도입을 주도한 신상균 前 한국전력 대전전력관리처장에게 당시 현장의 생생한 경험담을 들어봤다.

 

 

 

 

 

 

 

 

 



 

 

 

 

먼길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신상균입니다. 저는 1965년 한국전력에 입사해 만 58세까지 근무했고, 지난 2001년 대전전력관리처장으로 은퇴했습니다.
 

‘초고압 직류송전(HVDC)’이란 어떤 기술이며, 기존 AC에 비해 HVDC가 차세대 송전기술로 주목 받는 이유는?

초고압 직류송전(High Voltage Direct Current, 이하 HVDC)은 AC(교류)를 변환기의 제어를 통해 DC(직류)로 송전하여 장거리 송전손실을 최소화하는 기술입니다. 특정 국가 혹은 지역에서 생산된 전력을 연계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통해 경제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기존의 AC와 DC의 단점을 개선한 차세대 송전방식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스웨덴은 1954년 본토와 96km 떨어진 Gotland(고틀란드) 섬 사이에 세계최초로 HVDC를 상용화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특히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전력망 연계의 필요성이 높은 유럽국가가 HVDC 기술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국내 최초의 HVDC인 제주~육지간 전력연계사업의 의의와 1987~1997년 공사를 전후해담당한 역할은?

1980년대 초, 초고압 직류송전(HVDC)의 도입을 추진한 이유는 단순히 제주~육지간 전력연계사업때문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일본이나 중국 등의 인접국가와 전력을 연계함으로써 전력공급의 안정성을 높이고, 규모의 경제성을 실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지리적으로는 반도국가이지만 실질적으로 육로가 차단된 ‘섬 아닌 섬’이란 한계가 있습니다. 초고압 직류송전(HVDC)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한국보다 전력 단가가 높을 뿐 아니라 (공식적인 시차는 없으나) 한국보다 해가 더 빨리 뜨는 등 생활상 시차가 있어 양 국가의 전력망 공유시 이론적으로 서로가 이익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막대한 설치비용과 정치·경제 분야의 협의가 필요합니다.

제주도는 국내에서 HVDC의 효율성을 검증하고, 건설 및 운용 능력을 축적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과 입지를 갖추고 있습니다. 첫 번째, 청정지역인 제주도의 특성상 석탄과 같은 저비용 대용량 발전소를 대규모로 건설하기 어렵고 이때문에 내륙에 비해 전력 조달비용이 높습니다. 두 번째, 주간에 전력소요가 높은 내륙과 달리 관광도시인 제주도는 야간 수요가 높아 HVDC를 통해 발전기 이용률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극히 일부의 기업만이 보유하고 있는 HVDC 기술을 100km에 달하는 장거리 구간에 성공적으로 설치 및 운용함으로써 국내 여타 지역에서 활용이 가능하고, 해외 수출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제주~육지간 전력연계사업은 첫삽을 뜬지 11년 후인 1997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저는 계통계획부장으로서 1983년부터 HVDC에 대한 사업성 및 해외사례분석을 시작하였고, 이후 이사회의 승인, 공개 입찰, 업체 선정, 계약체결 등 착공 이전까지 HVDC와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였습니다.

제주~육지간 초고압 직류송전(HVDC) 건설 당시 최대 난관은?

제주~육지간 초고압 직류송전(HVDC) 은 해외 기업의 기술을 도입해야 했으며, 10년 이상의 공사기간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100km에 달하는 공사구간 등으로 적지 않은 사업비가 소요되는 국가적인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러나 HVDC를 통해 절감할 수 있는 제주도의 전력 조달비용과 제주도의 환경보호, 내륙의 저렴한 전력 활용 등의 부가적인 효과를 감안하면 (당시 국내 금리가 8~9%인 점을 감안하여도) 경제성이 높다고 판단하였고, 이사회의 승인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승인보다 이후의 과정이 험난했는데요. 무엇보다 HVDC 기술을 보유한 유럽 기업이 기술 전수를 극도로 꺼렸습니다. 반면 한전의 입장에서는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는 사업이다 보니 제작 기술까지는 어렵더라도 HVDC의 운영기술과 노하우만큼은 반드시 얻어내야 한다는 것이 최대 당면과제였죠.
그로 인해 사업 이전부터 HVDC 기술을 보유한 해외업체에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연구원과 담당자들을 연수차 파견을 추진했는데 막상 사업 공고에 앞서 LG전선, 대한전선 등 국내기업 관계자와 함께 현지공장을 방문하니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현지시찰을 거부하더군요. 공장만 한 번 볼 수 있었어도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이전을 요구하는 조건으로 입찰공고를 진행했고, 유찰되었는데요. 의도한 것은 아니시겠지만 결과 적으로 감사원의 징계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주신다면?
 

당시 HVDC 기술은 스웨덴·프랑스·영국·이탈리아 등 극소수의 유럽국가가 선점하고 있었고 ‘보이지 않는 단합’으로 우리나라 입장에서 볼 때 계약 조건이 매우 불리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혈세를 투자 해 짓는 국가기간사업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운영기술조차 전수
받지 못하는 조건으로 HDVC를
도입할 수 없었습니다. 사업비를 감안하면 쉽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으나, 단 하나의 기업도 입찰하지 않을 것으로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참 난감했습니다. 추후 감사원은 ‘경제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국가기간사업이 지연’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었고 저를 포함한 한전 측 2명과 정부 측 2명이 징계를 받았습니다. 징계 받는다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지만 그 덕분에 조금이나마 우리나라에 유리한 조건으로 HVDC 기술을 도입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유럽국가의 높은 벽을 실감한 후 2번째 입찰공고는 좀 더 신중하게 진행했습니다. 국내업체를 설득해 히타치, 스미모토 등 해저케이블 기술을 보유한 일본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공동입찰을 추진했습니다. 비록양국 모두 HVDC에 대한 기술과 경험은 부족했지만 충분한 사업비와 기간이 주어진다면 개발할 여력이 된다고 봤거든요. HVDC 원천기술을 보유할수 있는 조건이라면 이에 따른 리스크 또한 감수할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프랑스의 Alcatel사와 GEC-ALSTHOM사가 근소한 차이로 선정되었습니다. 벌써 삼십여 년전의 일입니다만 이 또한 유럽업체가 일본측에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 국내업체 담당자에 따르면 입찰 직전에 일본측의 요구로 사업비를 변경했는데, 그 차이가 결정적이였거든요. 신기술을 국내에 도입한다는 것이 이처럼 험난합니다.(웃음)

1987년 드디어 국내 HVDC 사업이 첫 삽을 뜨게 되었습니다. 실무자로서 감회가 새로우셨을 것 같은데, 시험운행 중 또 다시 징계를 받으셨다구요? 대체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당시 한전은 HVDC 전반에 걸친 경험이 전무했습니다. 물론 육지~제주의 변환기 입지선정, 해양전문가의 해류조사 등은 국내에서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변환기의 설치부터 해저케이블 생산과 매설은 물론 운영에 이르는 실질적인 과정은 모두 선정업체에 턴키(Turn Key)로 맡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육지와 제주의 일부 구간만 해저케이블을 매설하고 이를 제외한 구간은 개방된 상태로 시험운행을 했는데, 이 곳을 오가던 선박에 의해 케이블이 손상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결국 제가 징계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되었습니다. 새로운 사업에 수반되는 시행착오였습니다만… 덕분에 현재 육지 ~제주의 해저케이블은 전구간이 매설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사업으로 인해 이후 국내 유사사업에 미친 영향이 있다면?

우여곡절 끝에 도입된 육지~제주간 전력연계사업은 안정성, 효율성, 경제성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제주도의 환경을 보호하면서 저렴한 전력을 공급한다는 초기의 목표를 달성한 셈이지요. 제가 은퇴한 후의 일이지만 2011년도에 두 번째 HVDC가 건설되었는데, 이 또한 첫 번째HVDC가 성공적이였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네요.

1차 HVDC 운전 몇 년 후 한전 사장께서 직접 2차HVDC의 도입에 대한 의견을 묻기도 했었습니다.
초반에 말씀드렸다시피 HVDC는 단순히 제주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고립된 대한민국의 전력을 중국·일본 등 인접국가와 연계함으로써 효율성과 경제성을 제고하기 위한 초국가적인 프로젝트로 검토하기 시작한 기술입니다. 육지~제주간 설치된 100km의 HVDC는 훗날 송전탑을 둘러싼 분쟁을 해결하는 대안으로 또는 한반도 통일 후 동북아 전력망 구축시 소중하게 활용될 ‘대한민국의 자산’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두 번이나 징계를 받는 등 파란만장했던 1987~1997년 사업 당시의 ‘나’에게 조언할 수 있다면 어떤 말씀을 전하고 싶으신지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담당했던 업무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HVDC와 765kV의 국내 첫도입을 추진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국내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가가 없던 시절, 관련 기술을 검토하고 현장에 직접 나가는 등 실제국내 도입되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책임자로 근무할 수 있었다는데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으니 자기 자신을 믿고 나아가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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